[Salon Interview] 농부는 왜 늘 행위로만 설명되는가

“의사는 사람 살리는 사람이라는데, 농부는 왜 늘 행위로만 설명되나요?” 뭐하농 이지현 대표가 10년째 괴산에 남은 진짜 이유
뭐하농 이지현 대표(사단법인 농 이사장) 인터뷰
10년 전 충북 괴산으로 귀농해 표고버섯 농사로 시작한 이지현 대표는 현재 전국 각지에서 자신만의 농라이프(農 Life)를 만들어가는 청년 농부, 그리고 농촌 청년들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지난 2025년에는 전국 80여 명의 청년들과 함께 '농게더링 포럼'을 진행한 바 있으며, 각자가 경험한 농촌살이의 시작과 과정, 소회와 포부 등을 글로 풀어 묶은 ‘우리 마음속엔 저마다의 농이 있지’라는 작은 산문집을 발행하기도 했습니다. 올해 4월에는 '사단법인 농'을 발족하며 농촌 청년들의 삶을 엮어내는 농촌 공동체를 구성해 활발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Q. 발제에서 “농부는 왜 행위로만 설명되는가”를 물으셨어요. 의사를 배 갈라서 종양 제거하는 사람이라고 부르지 않는 다는 비유도 기억에 남습니다. 이 질문이 처음 대표님 안에서 또렷해진 순간이 있었나요?
“귀농 초기 8,000평 감자밭에서 마지막 감자 캐고 앉아 있던 그날이 아마 시작이었을 거예요. 감자밭에서 흙냄새를 맡으며 느꼈던 벅찬 감동이 아직도 생생해요. 남편이 트랙터로 흙을 다 뒤집어놓고, 저는 가운데 앉아서 흙을 만지고 있었는데, 바람이 확 불어서 흙냄새가 코로 훅 들어왔어요. 그 순간 이상하게 감사한 감정이 들면서 벅찬 마음이 들었는데, 동시에 억울했어요. 이 직업은 이렇게나 벅찬데, 사람들은 꽤나 자주 농촌 청년들을 두고 '도시에서 실패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그게 갑자기 억울했던 거죠. 그때부터 농업을 농산물이 아닌 언어로 설명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농업은 생명을 다루고 자연의 순환에 기여하는 엄청난 가치를 지닌 일입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저 1차 산업의 ‘생산자’로만 납작하게 평가받고 있었어요. 행위가 아니라 가치로 농업을 설명하고 싶었습니다. 농부가 자연과 사람을 동시에 살리는, 누구나 선망하는 멋진 직업이라는 것을 문화적으로 증명해 내는 것이 저와 우리 팀의 첫 번째 미션이었습니다.”
Q. 뭐하농을 거점으로 카페·교육·제품·커뮤니티를 모두 소화하시다가 지난해 세 개로 분리하셨습니다. 뭐하농(교육), 에트하우스(소비자 브랜드), 사단법인 농(커뮤니티)인데요. 그 분리의 결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게 무엇인가요?
“투자자는 '돈 안 되는 커뮤니티는 접어라' 하고, 재단은 '영리 카페를 접고 커뮤니티에 집중하라'고 하더군요. 좋은 취지로 시작했지만, 모든 걸 한 바구니에 담으니 우리가 무엇을 하는 조직인지 소비자도 헷갈려 했습니다. 그런데 각각 비지니스가 잘되고 있으니까 오히려 하나에 묶어두면 서로 성장한다는 걸 나중에 알았어요. 어려웠던 건 결정 자체가 아니라 함께 시작한 친구들과의 관계 재정의였어요. 그래서 과감히 나눴습니다. 비즈니스로서 스케일업해야 할 영역(에트하우스, 뭐하농)과 공공의 이익을 위해 지속가능하게 판을 깔아야 할 영역(사단법인 농)을 분리하니 오히려 각자의 본질에 더 깊게 집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Q. 크레이지 퀼팅(crazy quilting)이라는 단어를 쓰셨어요. 안 어울리는 조각들이 모여 작품이 된다는. 지금 대표님 손에 잡히는 조각들은 무엇이고, 아직 붙이지 못한 조각은 무엇인가요.
“귀농 10년, 회사 6년의 시간을 거치며 수백가지의 조각을 만났고, 이어붙이고 있어요. 각 지역의 농부들, 지역에서 무언가 해보려는 창업자들, 지역에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해보려는 사람들, 지역 연구자들, 농촌 연구자들, 지역에 애정을 가진 임팩트 회사들, 완전히 다른 영역에 있지만 농촌의 이야기를 응원하고 참여하려는 누군가 등등 정말 많은 사람들이 함께 이어져 있어요. 여기에 아직까지 이어지지 못한 사람들과 그분들의 전문성이 함께 모여 새로운 시너지가 날 수 있도록 계속 시도하고 있습니다. 특히, 대학 연구자들과 기업들이 새로운 ‘농’에 대해 이해하며 함께 이어질 수 있도록 다양한 방식으로 연결해보려고 합니다.”
Q. ‘농게더링’에 무려 400여 명의 청년들이 다녀갔습니다. 이토록 많은 이들이 모이는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농게더링 첫 모임에서 새벽 4시까지 80명이 우셨다는 이야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왜 다들 울었을까요.
"농촌에는 목적성 있는 공동체만 있어요. 작목반, 유통조합 같은 것들이요. 그런데 농사 안 짓거나, 농사만으로는 못 살아서 농사 외에 다른 활동을 시작한 청년들은 어디에도 못 껴요. 종종 외롭고 팍팍한 마음이 들어도 이야기할 데가 없는거죠.
그런데 모여서 “우리는 왜 농촌에서 살까”라는 질문을 던지니까 다들 자기가 왜 여기 있는지 처음으로 자기 언어로 말할 기회가 온 거예요. 그동안 못 했던 말이 터진 거고, 그게 나만 힘든 게 아니었다는 걸 아니까 눈물이 났던 것 같아요.
거창한 목적을 공유하는 작목반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삶의 취향을 공유하는 느슨하지만 단단한 연대가 필요했던 겁니다. 내 고민을 이해해 주는 동료가 있다는 연결감 자체가 로컬에서 버티게 하는 가장 큰 자본입니다.”
Q. 발제 마지막 문장이 오래 남았습니다. “사회 문제 해결에 관심이 없다"는 말씀이었어요. 그 말이 임팩트 생태계에서 나오기 쉬운 말은 아니었을 텐데요.
“솔직히 그 말을 하고 싶었어요. 임팩트 생태계에서 오래 활동하는 분들을 존경하지만, 저와는 다른 언어로 움직이는 것 같아요. 저는 사명감으로 시작한 게 아니라 그냥 감정이 뒤흔들려서 시작했어요. 농부라는 직업이 왜 이렇게 아무 가치도 인정받지 못하나 화가 났고. 사명감보다 분노와 행복이 훨씬 먼저였어요.
농촌에서 실제 삶을 사는 저희들에게는 어떤 책임감이나 의무감은 ‘사회 문제’나 ‘지역 소멸’이 아닌 ‘나’, ‘우리 가족’,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삶’에 대한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는 것 같아요. 어찌보면 이건 ‘농촌의 문제’나 ‘지역의 문제’가 아닌 ‘제 삶의 문제’라고 말씀드리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Q. 앞으로 10년, 대표님이 그리는 농촌의 다음 장면은 어떤 모습인가요.
“저는 10년 뒤 농촌이 더 재미있어질 거라고 확신해요. 정책이나 군청 통폐합 같은 걸로 그림 그리는 게 아니에요. 지금 농촌에 들어오는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이 예전과 완전히 달라요. 농사 안 지어도, 도시 밖에서 자기 삶을 설계하는 사람들이 계속 늘고 있어요. 이걸 어떻게 해석하고 설계해줄 것인가가 다음 10년의 일이라 생각해요. 실제 지금도 자신의 삶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친구들이 농촌에서 무언가 시도해보고 있으니까요. 그냥 사는게 아닌, 고민하고 즐거운 삶에 대한 목적이 다양해지는 공간. 농촌이 그런 공간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7월의 Salon Interview 공통 질문] 경계를 허물고 협력이 작동하는 로컬의 방법론에 대하여
모두 각자의 영역에서 기존의 경계를 허무는 협업을 통해 새로운 ‘로컬 자본’을 만들어내고 계십니다. 이번 SOVAC Salon 현장에서 미처 다 전하지 못한 로컬의 방법론이 있으신가요? 혹시 현장에서 시간관계상 못 다한 이야기가 있으시다면 함께 전해주셔도 좋습니다.
“이번 SOVAC Salon 현장에서 미처 다 전하지 못한 로컬의 방법론이 있다면, 저는 ‘따로 또 같이’ 작동하는 유연하고 즐거운 연대를 꼽고 싶습니다.
1인 창작자나 소규모 창업자도 이런 연결이 있다면 지역에서 결코 외롭지 않습니다. 오히려 서로 다양한 인사이트를 주고받으며 동반 성장할 수 있죠. 저 역시 5~6년 전에는 여러 직원들과 한 공간에서 일했지만, 지금은 그들 모두 각자의 분야에서 독립된 1인 창작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 또한 다양한 분야의 대표님들과 서로 돕는 관계를 맺고 있고요.
현재 저희는 큰 프로젝트나 행사를 진행할 때마다 하나의 ‘크루(Crew)’로 뭉쳐서 일합니다. 평소에는 각자의 일터에서 자신의 작업에 집중하다가, 서로가 필요한 상황이 오면 마치 한 팀처럼 모여 시너지를 냅니다. 프로젝트가 끝나면 다시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고, 일의 성격에 따라 크루의 구성도 유연하게 달라지죠.
결국 ‘함께한다’는 것은 각자의 고유한 일과 영역을 존중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는 것 같습니다. 서로를 향한 존중이 온전히 느껴질 때, 비로소 자연스레 함께하고 싶다는 마음도 쌓인다고 생각하고요. 따로 또 함께 가는 즐거운 연대가 농촌 안에서 더욱 크고 선명한 모습으로 전개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본 인터뷰는 SOVAC Salon의 든든한 파트너 '소셜임팩트뉴스'의 지원을 통해 제작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