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란희 ESG 미디어 스타트업 임팩트온 대표
‘이들은 다 어디서 왔을까.’
순간 접속자 수가 1200명을 넘기더니, 방송이 끝난지 몇 시간 만에 조회 수가 무려 12만명을 넘어섰다. 지난 26일 열린 ‘소셜밸류커넥트(SOVAC) 2022’ 첫 월례행사에 몰린 비대면 시청자들 이야기다. ‘2022 ESG 디바이드(divide)가 시작된다’라는 주제의 15분 강연 내내 실시간 유튜브 댓글 창은 쉼없이 떠들썩했으며 끝나자마자 카카오톡으로 모 기업 ESG팀장과 모 NGO 사무국장 등이 오랜만에 근황을 전해왔다.
“소백(SOVAC), 그 전부터 알고 있었어요?”
함께 근무하는 밀레니얼세대 팀원에게 물어봤다. 이 팀원은 “사회적기업에서 일하는 친구가 2019년 열렸던 오프라인 SOVAC 행사에서 직접 부스를 설치해 홍보했었다”며 “사회적가치 생태계에서는 ‘기회’를 주는 플랫폼으로 여겨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쯤 되면 ‘소셜밸류커넥트(흔히 줄여서 SOVAC이라고 부른다)’의 정체가 무엇인지 궁금해질 것이다. SOVAC은 국내 최대의 민간 사회적가치(SV) 플랫폼이다. 사회적기업 생태계에 있는 사람들은 SOVAC을 운영하는 곳이 SK라는 걸 다 안다. 2019년 최태원 회장이 제안해 출범한 플랫폼이다. 하지만 슬로건 어디에도 SK 브랜드는 없다. 운영은 SK가 하지만, 이 플랫폼의 이용자는 일반기업부터 사회적기업이나 소셜벤처, 비영리재단, 학계, 일반인까지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이다. 소액의 성금을 복지기관에 전달할 때조차도 기부금 전달식과 사진 촬영을 통해 기업명을 노출시키는데, SK는 왜 이렇게 돈 안되는 플랫폼을 운영하는 걸까. SOVAC은 SK 사회공헌의 ‘끝판왕’인가.
SOVAC을 자세히 관찰해 보면, ESG라는 대전환 시대 우리 기업이 진짜 고민해야 하는 키워드를 발견할 수 있다. 대전환의 ‘방향’이 어디를 향하는가이다. ESG를 강력하게 이끄는 그룹이 블랙록 같은 자산운용사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 뒤에는 대규모 연기금이 있고, 연기금 뒤에는 이들에게 노후자금을 맡긴 선진국 국민이 있다. 기후와 미래세대, 건강한 자본주의를 생각하는 국민들이 투자방향을 조정하는 것이다. 419억달러(49조원)를 운용하는, 미국에서 가장 기부금이 많은 하버드대가 지난해 9월 “화석연료 투자를 중단하겠다”고 선언한 데는 ‘다이베스트 하버드(Divest Harvard)’라는 학생조직의 10년 캠페인이 결정적이었다.
우리 사회에 ESG 열풍이 불면서 기업들은 ‘ESG위원회 신설’과 ‘ESG 전략 및 실행체계 구축’ 등과 같은 내부 시스템 확립에 힘을 많이 쏟고 있다. 하지만 자칫 기업 내부의 ESG 평가와 관리에만 매몰될 경우, ESG의 본질을 놓칠 위험이 있다. 백신 접종만 끝내면 코로나 19가 다 해결되리라고 보는 것과 마찬가지다. ESG라는 비재무성과가 중요해진 진짜 원인은, 자본주의를 이만큼 견인해왔던 글로벌 대기업들이 환경(E)·사회(S)로부터 부여받았던 특권만 믿고 과속하다가 여기저기서 고장을 일으키고 있다는데 있다. 이제 온실가스 배출권을 돈으로 사야 하고, 일회용 플라스틱에 부담금을 내야 하며, 탄소세를 내야 하는 건, 결국 사회가 기업에 부여했던 사업면허에 제재를 가하겠다는 선전포고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은 어느 방향을 바라봐야 할까. 당연히 ‘사회’다. 앞으로 기업은 사회와의 접촉면을 지금보다 훨씬 더 늘려야 한다. 사회 변화의 민감도도 높여야 한다. 글로벌 투자자들이 30%라는 목표치까지 제시하며 ‘이사회 다양성(Board Diversity)’을 중시하는 건 바로 다양한 사회의 관점을 기업 내부로 이식하는 일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50~60대 중년 (백인) 남성들만 모인 조직의 집단사고로 인한 의사결정 실패를 막자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SOVAC은 기업과 사회 모두에게 윈윈이 될 수 있는 플랫폼이다. 기업은 사회적 가치 생태계에 판을 깔아주고, 소셜 조직들은 조직간 협업과 네트워크를 통해 시너지를 낸다. 8년 전인 2014년 최 회장은 ‘새로운 모색, 사회적 기업’ 책을 출간하면서, ‘왜 2000억원의 사회공헌금액을 쏟아붓는데도 사회문제 해결은 이렇게 더딘지’에 대한 그의 고민을 토로한 바 있다. 공공성과 효율성, 공공 영역과 시장 영역, 자선 방식과 비즈니스 방식이라는 이분법적인 접근으로 우리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역부족이라는 걸 깨닫고, “사회적기업에 대한 인센티브(SPC)를 주고, 자생적 생태계 구축을 돕자”고 나섰다. 그렇게 매년 100억원씩 사회적기업에 인센티브를 주면서 오랜 기간 소셜 생태계와 접점을 만들어간 끝에 탄생한 게 SOVAC 플랫폼이다. 어쩌면 이는 ESG 사회공헌을 하겠다면서 환경보호 캠페인, 플로깅 봉사활동 등을 홍보하는 단기 이벤트와는 매우 다른, 30년, 아니 100년 후를 내다본 장기 투자에 가깝다. SOVAC이 사회적 생태계에서 얼마만큼의 신뢰 자산을 쌓았는지는 아직 모르겠다. 다만, 꽤 오랜 시간 함께 해오다 보니 대기업에 대한 막연하고도 부정적인 편견을 누그러뜨리는 역할에는 일조했을 것이다.
‘접촉 가설’이라는 유명한 커뮤니케이션 심리 이론이 있다. 미국 심리학자 고든 올포트가 제시한 가설인데, 적대적인 그룹간 접촉만으로도 고정관념과 편견을 줄이는데 상당한 효과가 있다는 이론이다. ‘필터 버블(filter bubble)’ 사회 속에서 사회는 기업을 탓하고, 기업은 사회에 서운해한다. 진짜 ESG의 북극성을 향하고 싶은 기업 CEO라면, 제2, 제3의 새로운 SOVAC을 한국 사회에 더 많이 만들어내도 좋을 것 같다.
박란희 임팩트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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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eroun.net/news/articleView.html?idxno=275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