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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VAC Column] 사람으로 채워온 지역의 공백, AI는 무엇을 도울 수 있는가

2026.10.13


물건을 팔러 다니며 사람의 삶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제가 일하고 있는 묘량면은 65세 이상 주민이 전체 인구의 45%가 넘는 농촌 지역입니다. 75세 이상 주민도 전체 인구의 4분의 1이 넘습니다. 면 안에는 식당이 두 곳 정도 있고, 주민들이 일상적으로 이용할 만한 상점은 거의 없습니다. 고령으로 운전하기 어렵거나 버스를 이용하기 어려운 어르신들에게 장을 본다는 것은 생각보다 큰일입니다.

 

동락점빵 이동장터는 일주일에 두 차례, 42개 자연마을을 찾아갑니다. 차량에 식료품과 생필품을 싣고 마을을 돌며 판매하고, 거동이 어려운 어르신에게는 집까지 무료로 배달합니다. 처음 이동장터를 맡았을 때는 저도 물건을 잘 준비하고, 정해진 시간에 마을을 찾아가 판매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매출은 이동장터를 지속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합니다. 사회적 가치만 이야기하면서 적자가 계속된다면 사업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같은 마을을 반복해서 다니다 보니 물건만 보이지 않았습니다. 지난주까지 나오셨던 어르신이 보이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이유를 묻게 되었습니다. 몸이 아픈 것인지, 병원이나 주간보호센터에 가신 것인지, 집에 다른 문제가 생긴 것인지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집으로 배달하러 갔다가 주거환경의 변화를 발견하기도 하고, 경사로 때문에 집 밖으로 나오기 어려운 상황을 알게 되기도 했습니다. 상하수도나 난방과 같은 생활의 어려움을 듣고 다른 기관과 연결한 일도 있었습니다. 건강이 좋지 않은데도 필요한 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하고 있다면 요양등급이나 주간보호센터에 대한 정보를 함께 알아보기도 했습니다.

 

이동장터가 이러한 문제를 모두 해결한 것은 아닙니다. 해결할 수도 없습니다. 다만 정기적으로 마을을 찾아갔기 때문에 주민의 변화를 조금 더 일찍 발견할 수 있었고, 필요한 곳과 연결할 수 있었습니다. 물건을 팔러 다녔지만, 그 과정에서 사람의 삶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지역의 부족함을 채운 것은 반복되는 만남이었습니다

농촌 지역의 문제를 이야기할 때 우리는 흔히 인구감소, 고령화, 교통과 의료의 부족을 이야기합니다. 모두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현장에서 만나는 주민의 삶은 이러한 단어만으로는 충분히 설명되지 않습니다.

 

이동장터를 이용하던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는 하나의 현상에도 이유는 저마다 다릅니다. 어떤 분은 건강이 나빠졌고, 어떤 분은 주간보호센터를 이용하기 시작했습니다. 가족이 방문하여 필요한 물건을 준비해주기도 하고, 경제적인 이유로 구매를 줄이는 분도 있습니다. 세상을 떠난 분도 계십니다.

 

운영 기록에는 모두 ‘이용하지 않음’으로 남을 수 있지만, 그 안에 담긴 삶의 변화는 전혀 다릅니다. 숫자만 보면 같은 결과이지만, 사람의 삶을 중심에 두고 보면 각기 다른 상황입니다. 저희가 지역의 공백을 채워온 방식은 새로운 기관이나 거대한 체계를 만드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같은 길을 반복해서 가고, 같은 사람을 다시 만나고, 지난번과 달라진 점을 알아차리는 일이었습니다.

 

한 번의 깊은 상담도 중요하지만, 농촌에서는 매주 이어지는 짧은 만남이 주민의 삶을 이해하는 데 더 도움이 될 때가 있습니다. 물건을 사며 나누는 짧은 대화, 오늘은 나오지 않은 주민을 찾는 이웃의 말, 집 앞에 놓인 물건과 생활환경의 변화가 하나의 정보가 됩니다. 다만 사람을 자주 만난다고 해서 그 사람을 모두 알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사회복지사가 주민을 잘 안다고 생각하는 순간, 오히려 당사자의 삶을 쉽게 판단할 수 있습니다.

 

제가 현장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자세는 ‘모름의 자세’입니다. 주민의 상황을 제가 다 안다고 생각하지 않고 다시 묻는 것입니다. 무엇이 필요한지 제가 먼저 결정하기보다 당사자의 이야기를 듣고, 어떤 방법을 선택할 것인지 함께 의논하는 것입니다. 도움을 주고 있다는 이유로 당사자의 결정권을 대신 가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9월 참여한 SOVAC Salon에서는 사람과 관계의 맥락을 읽는 이러한 힘을 ‘휴먼 리터러시’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를 사람을 많이 알고 잘 파악하는 능력이라기보다, 사람을 하나의 문제나 정보로 단정하지 않고 그 사람의 삶과 관계 속에서 이해하려는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지역의 공백을 채워온 것은 뛰어난 한 사람의 능력이 아니었습니다. 주민을 반복해서 만나는 사람들, 이웃의 변화를 살피는 주민들, 필요한 일을 서로 연결해온 관계가 함께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기록하면서 우리가 해온 일을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기록이 사회복지사의 중요한 책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복지 현장은 같은 사례라도 사람과 상황, 지역과 관계에 따라 개입하는 방법과 결과가 달라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장에서 축적되는 실천가의 경험과 암묵지는 중요합니다. 다른 지역의 우수사례를 그대로 가져와도 쉽게 적용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런데 현장의 경험은 기록하지 않으면 대부분 담당자의 기억 속에만 남습니다. 담당자가 자리를 옮기면 함께 사라지기도 합니다. 좋은 일을 많이 했더라도 기록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그 경험을 살펴보고 이어갈 수 없습니다.

 

저도 2023년 6월부터 이동장터를 담당했고, 2024년부터 운영 과정에서 만난 주민의 이야기와 그날의 상황을 운영일지에 기록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부터 체계적인 연구를 목적으로 기록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어떤 마을에 갔는지, 누구를 만났는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 잊지 않기 위해 적었습니다. 그런데 기록이 쌓이면서 평소에는 보지 못했던 흐름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계속 이용하던 주민이 어느 시점부터 나오지 않는 일, 건강이 나빠져 이용 횟수가 줄어드는 과정, 마을회관을 중심으로 공동구매가 늘어나는 변화, 정책지원금이 지급된 시기와 매출이 달라지는 모습이 기록 안에 함께 남아 있었습니다. 희망제작소가 개최한 사회적가치투자 SIR대회에 참여하면서 이 기록을 다시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이동장터의 성과를 매출과 이용 인원으로 설명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매출과 이용 인원만으로는 저희가 현장에서 해온 일을 충분히 설명할 수 없었습니다.

 

매출에는 배달 과정에서 발견한 주거 문제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이용 인원에는 나오지 않은 어르신을 확인하고 다른 기관과 연결한 일이 담기지 않습니다. 주민과 나눈 대화와 관계의 변화도 숫자만으로는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매출을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취급할 수도 없습니다. 이동장터는 사회복지사업이면서 동시에 상품을 판매하는 경제활동입니다. 매출이 있어야 상품을 준비하고 사람을 고용하며 다음 마을을 찾아갈 수 있습니다.

 

저희 현장의 어려움은 경제적 성과와 사회적 가치를 둘 중 하나로 선택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두 기능이 한 차량 안에서 동시에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기록하고 설명할 것인가에 있습니다.

 

SIR대회는 이동장터를 외부에 알린 자리이기도 했지만, 제가 해온 일을 다시 읽어보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매출과 이용 인원 뒤에 가려져 있던 만남과 발견, 연결의 가치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과거의 경험은 오래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자산이 되지 않습니다. 기록하고, 다른 사람이 살펴볼 수 있도록 정리하고, 그 의미를 함께 논의할 때 비로소 다음 실천을 돕는 지식이 됩니다.

 

AI가 기록을 함께 읽을 수 있을까

저는 AI 전문가가 아닙니다. 지역에서 주민을 만나고 이동장터를 운영하는 사회복지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AI가 지역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고 쉽게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여러 해 동안 쌓인 이동장터 운영일지를 정리하고 분석하는 과정에서 AI를 활용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습니다.

 

운영일지는 대부분 글로 작성되어 있습니다. 어느 주민이 언제부터 보이지 않았는지, 어떤 문제가 반복해서 나타났는지, 특정 마을에서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를 사람이 처음부터 모두 읽고 분류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AI를 활용하면 여러 해의 기록에서 반복되는 내용을 찾고, 주민이나 마을의 변화를 시간순으로 정리하며, 판매·방문·배달·복지서비스 연결 기록을 함께 살펴볼 수 있을 것입니다. 담당자의 기억에 의존했던 내용을 다른 실무자와 공유할 수 있는 자료로 정리하는 데에도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행정서류나 보고서 작성에 사용하는 시간을 줄여서 주민을 만나는 일에 조금 더 사용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습니다.

 

기록된 내용이 그 사람의 삶 전체는 아닙니다. 실무자가 당시 보고 들은 일부 내용일 뿐입니다. 기록되지 않은 사정도 있고, 시간이 지나면서 달라진 상황도 있습니다. 잘못 기록했거나 실무자의 관점이 과도하게 반영되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AI가 기록을 분석해서 특정 주민을 ‘위험한 사람’, ‘관리해야 할 사람’으로 분류한다면 당사자는 자신의 삶에 대한 설명과 결정 과정에서 제외될 수 있습니다. 도움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개인정보를 과도하게 수집하거나, 주민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생활정보가 여러 기관에 공유되는 문제도 생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AI를 활용하기 전에 먼저 물어야 할 질문이 있습니다. 무엇을 기록할 것인가. 이 기록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누구와 공유할 것인가. 당사자는 자신의 정보가 어떻게 사용되는지 알고 있는가. 잘못된 기록을 수정하거나 삭제해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가.. 기술을 사용할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당사자의 권리와 선택을 어떻게 지킬 것인지 먼저 정해야 합니다.

 

AI가 사람보다 더 정확하게 주민을 판단해줄 것이라고 기대해서도 안 됩니다. AI가 할 수 있는 일은 흩어진 기록을 연결하고, 사람이 놓쳤을 가능성이 있는 변화를 알려주며, 다시 살펴봐야 할 지점을 제안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내용을 당사자에게 다시 묻고, 필요한 지원을 함께 의논하며, 판단의 결과에 책임지는 일은 여전히 사람의 몫입니다.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지난 SOVAC Salon에서 짚어본 질문은 명확했습니다.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저는 과거가 그대로 현재를 돕는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과거의 경험이 특정 실무자의 기억이나 잘 정리된 미담으로만 남아 있다면, 다음 실천가에게 큰 도움이 되기 어렵습니다. 좋은 사례 하나를 다른 지역에 그대로 적용한다고 해서 같은 결과가 나타나는 것도 아닙니다. 지역과 사람, 상황과 관계가 모두 다르기 때문입니다.

 

과거가 현재를 돕기 위해서는 그때 무엇을 했는지만 기록해서는 부족합니다. 왜 그런 판단을 했는지, 당사자는 무엇을 원했는지, 어떤 방법은 작동했고 어떤 방법은 작동하지 않았는지, 당시에는 알지 못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함께 남겨야 합니다.

 

수많은 현장 실천가의 암묵지가 기록되고 공유된다면, 이후에 따라오는 실천가가 시행착오를 완전히 피할 수는 없더라도 오차범위를 조금씩 줄여갈 수 있을 것입니다. AI도 이러한 과정에서 활용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기술이 먼저 들어와 지역의 문제를 정하고 답을 제시해서는 안 됩니다. 지역이 그동안 무엇으로 버텨왔는지, 주민과 실천가들이 어떤 관계를 만들며 공백을 채워왔는지 먼저 살펴야 합니다.

 

AI가 사람을 대신하는 방향이 아니라, 사람이 주민을 다시 만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주는 방향으로 사용되어야 합니다. 실무자의 판단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더 신중하게 판단하도록 돕고, 당사자의 목소리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더 잘 듣도록 돕는 기술이어야 합니다.

 

이동장터 한 대가 농촌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저희도 여전히 많은 것을 알지 못하고, 때로는 주민의 변화를 뒤늦게 발견합니다. 경제성과 사회적 가치 사이에서 계속 고민하고, 기록하지 못한 일도 많습니다. 다만 같은 길을 반복해서 다니며 주민을 만났고, 그 과정에서 보게 된 것을 기록해왔습니다. 그리고 그 기록을 다시 읽으며 우리가 해온 일의 의미와 한계를 함께 확인하고 있습니다.

 

AI가 이 기록을 더 잘 정리하고 살펴보도록 돕되, 사람의 삶을 대신 판단하지 않는다면 과거의 경험은 현재의 실천을 도울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기술이 지역의 부족한 사람을 대체하기보다, 지역에서 사람과 사람이 계속 만날 수 있도록 돕는 방향으로 사용되기를 바랍니다.


기고 : 동락점빵사회적협동조합 김동광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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