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가치연구원

계란이 던지는 질문, 시장가격으로 드러나지 않는 동물복지의 가치를 어떻게 측정할까?

2026.09.11

*본 콘텐츠는 SOVAC Together 콘텐츠 파트너 사회적가치연구원(CSES)의 아티클을 담고 있습니다. 


1,193원. 우리나라 소비자가 동물복지 인증 계란에 추가로 지불할 의사가 있다고 밝힌 금액이다(특란 10개 기준). 그러나 같은 연구에서 소비자의 약 25%는 인증 계란에 한 푼도 더 낼 의사가 없다고 답했다. 동물복지의 필요성을 묻는 조사에서는 대부분이 동의하면서도, 실제 구매 행동으로 이어지기까지의 간극은 여전히 크다. 하지만 이 차이는 개인의 위선이라기보다는 구조의 문제에 가깝다. 그리고 이 구조를 이해하는 일은 사회적 가치 측정이 오랫동안 고민해 온 질문과도 맞닿아 있다. 시장이 값을 매겨주지 않는 가치는 어떻게 인정받을 수 있을까. 필자는 최근 동물복지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이 질문이 사회적 가치와 임팩트 측정분야가 오랫동안 고민해 온 문제들과 닮아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글에서는 동물복지의 측정·평가·인증제도에 관한 논의를 소개하고, 이를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시사점을 짚어보고자 한다.



동물복지는 사회적 가치인가?


사회적 가치를 이야기할 때 우리는  취약계층의 일자리, 지역사회 회복,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과 같이 사람을 먼저 떠올린다. 그러나 사회적 가치의 역사가 곧 '고려해야 할 이해관계자의 범위가 확장되어 온 과정’인 점에서, 동물은 그 확장의 최전선에 있는 이해관계자라고 할 수 있다. 


동물복지는 이미 글로벌 규범의 영역에 들어와 있다. EU는 동물복지 법제를 지속적으로 정비하고 있으며, 세계 50개국의 동물복지 법률과 정책을 평가해 등급을 매기는 동물보호지수(Animal Protection Index)2와 같은 국제 비교 지수도 운영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동물보호법이 꾸준히 개정되고, 동물복지축산인증제가 10년 넘게 운영되어 왔으며, 지자체마다 동물복지 조례와 계획이 만들어지고 있다. 


반려동물 양육 인구가 1,500만에 이르는 지금, 동물을 어떻게 대우하는가는 한 사회의 성숙도를 보여주는 지표이자 기업과 정부가 관리해야 할 사회적 가치의 영역이 된 것이다. 그렇다면 동물복지라는 가치는 어떻게 확인하고 관리할 수 있을까.


무엇을 측정할 것인가: 사육장 평수가 아닌 동물의 삶


동물복지 측정론은 세 가지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첫째, 측정하지 않으면 관리할 수 없다. 둘째, 동물복지는 신체적·정신적 상태, 행동, 환경 등을 아우르는 다면적 개념이어서 하나의 요소만으로 평가하기 어렵다. 셋째, 사람마다 주관적으로 다르게 해석할 여지가 있으므로 객관적이고 통합적인 평가 기준이 필요하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사회적 가치 측정의 출발점과 사실상 같다. 


동물복지 분야에서 가장 핵심적인 구분은 '자원 기반(resource-based) 지표'와 '동물 기반(animal-based) 지표’이다. 자원 기반 지표는 동물에게 무엇이 제공되었는가를 본다. 사육시설의 크기, 급수 설비, 청결 상태. 등이 이에 해당한다. 반면 동물 기반 지표는 질병 발생률, 피부 상태, 행동 변화, 스트레스 징후와 같이 동물에게 실제로 나타난 결과를 본다. 국제적 논의는 점차 동물에게 무엇을 제공했는가보다 실제로 어떤 상태에 있는가를 보여주는 동물 기반 결과 지표를 중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시설이나 자원이 충분히 제공되었다고 해서 반드시 동물의 복지 향상이라는 결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는 임팩트 측정에서 강조하는 산출(output)과 결과(outcome)의 구분과 같다. 교육 프로그램을 몇 회 제공했는가가 아니라 실제로 참여자의 삶이 달라졌는가를 물어야 하듯, 사육장이 몇 평인가가 아니라 그 안에서 동물이 실제로 건강하고 자연스러운 행동을 할 수 있는가를 물어야 한다. 결과 중심의 측정이라는 원칙은 종(種)의 경계를 넘어 유효하다. 


측정의 철학도 진화하고 있다. 1979년 정립된 다섯 가지 자유(Five Freedoms)가 굶주림, 고통, 두려움 등 부정적 상태로부터의 자유에 초점을 맞췄다면, 2000년대 이후에는 동물이 즐거움과 만족을 경험하는 긍정적 복지(positive welfare)로 범위가 확장되고 있다. 서울시 야생동물 전시시설 실태조사가 멜러(Mellor)의 Five Domains 모델을 채택해 영양, 물리적 환경, 건강과 함께 '환경·동물·인간과의 상호작용'을 평가한 것이 대표적 예다.


어떻게 측정할 것인가: 정밀함과 실현가능성 사이


좋은 지표의 요건에 대한 논의도 고도화되고 있다. 동물복지 지표는 측정하려는 것을 제대로 측정하는 유효성(valid), 관찰자가 달라져도 일관된 결과가 나오는 신뢰성(reliable), 현장에서 실제로 수행 가능한 실현가능성(feasible), 원인과 연결해 개선 행동을 이끌 수 있는 구체성(specific)을 갖추어야 한다.


이러한 원칙을 바탕으로 발전해 온 대표적 평가체계가 EU에서 개발한 Welfare Quality® 프로토콜이다. 적절한 먹이, 적절한 사육환경, 양호한 건강상태, 적절한 행동이라는 4개 원칙과 12개 복지 기준으로 동물복지를 종합적으로 평가한다. 특히 동물 기반 지표에 더 많은 비중을 두어 동물의 실제 상태를 풍부하게 반영한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데이터 수집에 시간이 오래 걸리고, 결과를 일반화하기 어렵다는 한계도 지적되었다.


이에 프랑스에서는 Welfare Quality의 원칙을 유지하되, 축산 종사자가 2시간 이내에 직접 평가할 수 있도록 실용성을 높인 현장형 도구 BEEP(Bien-Être en Élevage de Porcs)가 개발되었다. 새로운 접근이라기보다 '일상적 관찰의 정식화'라는 점에 의미가 있다는 평가다. 이 외 오스트리아의 ANI 35L처럼 동물복지법과 연계해 유기농 농장 관리에 공식적으로 활용되는 도구도 있다. 


측정을 제대로 만드는 장치: 인증과 지수


측정이 일회적 진단에 그치지 않으려면 이를 뒷받침하는 제도가 필요하다. 동물복지라는 신뢰재에 대해 ‘인증’은 소비자가 확인하기 어려운 품질을 보증해 정보 비대칭성을 해소하는 장치이고, ‘지수’는 시민이 확인하기 어려운 정책 수준을 비교 가능하게 만드는 장치다. 즉, 인증과 지수는 시장 실패를 보완하는 사회적 인프라며 사회적 가치 측정 생태계의 중요한 요소이다.


해외에서는 마스 펫케어(Mars Petcare)가 2019년 시작한 Better Cities for Pets 인증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 프로그램은 도시의 반려동물 친화성을 보호소, 주거, 공원, 비즈니스 네 영역으로 평가해 인증한다. 인증 여부만 통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인증도시에는 보조금과 컨설팅이 제공된다.


국가 간·지역 간 비교 지수도 축적되고 있다. 동물보호지수(API. Animal Protection Index)는 각국의 법률과 정책을 11개 지표로 평가해 등급을 매기고, 미국 동물법률방어기금(ALDF)은 매년 56개 관할구역의 동물 관련 법률을 70여 개의 문항으로 분석한 주별 랭킹 보고서를 발간한다.


국내에서도 관련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2023년 한양대학교 연구진은 동물복지를 '동물의 상태'(신체적 건강, 정신적 안녕, 본성의 실현), '인간의 행위'(사육·관리, 운송, 도축, 양육, 유기), '사회의 조건'(조례와 제도, 조직과 인프라, 예산과 인력, 시민의식)이라는 세 가지 평가 영역으로 구조화해 동물이 실제로 어떤 상태에 있는지, 인간이 동물을 어떻게 대우하는지, 사회가 어떤 조건을 갖추고 있는지를 함께 보고자 했다.


경기도는 2024년 6월부터 2025년 4월까지 반려동물 복지수준 실태조사 연구용역을 진행해 지역 특화 복지지표와 동물보호센터 표준업무절차를 마련했다. 이러한 시도는 단순히 지자체의 순위를 매기는 데 그치기보다, 각 지역의 강점과 취약점을 파악하고 이를 정책 개선으로 연결될 때 의미를 갖는다.


한국에의 적용: 가능성과 한계


이러한 논의를 우리나라에 적용할 수 있는 기반은 이미 어느 정도 갖춰져 있다. 동물보호법이라는 법적 토대가 있고, 동물복지축산농장 인증제도 10년 넘게 운영돼 왔다. 지방자치단체의 조례와 예산, 동물보호센터 운영자료 등 활용할 수 있는 행정데이터도 축적되고 있으며 시민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한계도 분명하다. 동물 기반 지표가 동물의 복지 상태를 더 직접적으로 보여주지만, 현재 확보하기 쉬운 데이터는 대부분 제도와 예산, 인력, 시설 등 사회적 조건에 관한 2차 행정자료다. 측정하고 싶은 것과 실제로 측정할 수 있는 것 사이에 간극이 존재하는 것이다. 어떤 지표를 포함할 것인지, 지표 사이에 어떠한 가중치를 둘 것인지에 대해서도 전문가와 활동가, 행정기관, 축산업계 사이에 견해 차이가 생길 수 있다. 지방자치단체를 하나의 종합점수로 줄 세우는 방식은 관심을 끌기 쉽지만, 평가 대상의 반발이나 방어적 대응을 불러일으켜 실제 데이터 제공과 개선 활동을 어렵게 만들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동물복지 측정은 순위를 정하는 데 목적을 두기보다 개선을 유도하도록 설계해야 한다. 완벽한 지표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기보다는 현재 활용할 수 있는 데이터로 시작하되, 동물의 건강과 행동, 정서 상태를 관찰할 수 있는 데이터 기반을 꾸준히 확충해야 한다. 이를 통해 동물 기반·결과 기반 지표의 비중을 단계적으로 높여갈 필요가 있다. 지표의 과학적 타당성만큼 중요한 것은 사회적 수용성이다. 농장주와 기업, 수의사, 연구자, 활동가, 소비자, 담당 공무원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지표의 의미와 한계를 함께 논의해야 한다. 무엇을 측정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정의, 지표와 결과를 연결하는 타당한 논리, 신뢰할 수 있는 데이터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측정은 동물복지를 실질적으로 개선하기보다 이미지를 포장하는 ‘워싱’의 수단이 될 수 있다. 이는 사회적 가치 측정과 동물복지 측정이 공통으로 경계해야 할 지점이다.


계란 매대 앞에 다시 서서


한 사회가 무엇을 측정하기로 결정하는가는 그 사회가 무엇을 가치 있게 여기는지를 보여준다. 동물복지를 측정한다는 것은 단순히 새로운 사회적 가치 지표 하나를 추가하는 일이 아니다. 인간의 의사결정에 큰 영향을 받으면서도 스스로 공적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기 어려운 동물의 상태와 경험을 우리의 판단 범위 안에 포함하는 일이다. 다음에 마트의 계란 매대 앞에 섰을 때, 포장지의 인증마크를 한 번쯤 들여다보게 된다면 좋겠다. 그 작은 표시 뒤에 어떤 기준과 측정, 검증의 과정이 있는지, 그리고 시장가격만으로는 충분히 드러나지 않는 가치가 무엇인지 한 번 더 돌아볼 수 있기를 바란다.


인터뷰/글 : 정다교 CSES 선임연구원


원문 : [VIEW] 계란이 던지는 질문, 시장가격으로 드러나지 않는 동물복지의 가치를 어떻게 측정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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