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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VAC Column] 로컬에서 청년은 어떻게 성장하는가

2026.08.25


지난해 가을, 제가 일하는 사단법인 점프는 국회에서 열린 입법박람회에서 ‘지방소멸에 대한 청년중심 지역 교육의 제도 및 행정 대응 방안’이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열었습니다. 지역소멸 시대에 청년과 교육을 통해 로컬의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 수 있을지, 현장에서 오래 활동한 분들과 청년들의 목소리를 듣는 자리였습니다.


그날 경북 안동에서 태어나 대학 시절을 포함해 평생을 고향에서 살아온 안동 사회적경제 허브센터 박명배 상임이사의 화두가 머리속에 오래 남았습니다. 


그는 외지 청년의 창업과 단기방문 중심으로 지역을 활성화하려는 것은 서울과 대도시 중심의 시각이라 지적했습니다. 지역의 문제는 지금처럼 규모의 경제를 지향하는 성장의 관점으로 접근하면 해결이 불가능하다고 말했습니다. 인구소멸은 규모의 경제에서는 단점이지만, 공동체와 사회연대경제로 문제를 풀어갈 때는 인구가 작은 것이 오히려 장점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지역에 뿌리내리고 있는 사회연대경제 주체들이 청년과 만나면 함께 주민들의 필요를 채우면서 성장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로컬에서 주민들에게 배우고 행동하며 지역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된 청년들의 새로운 시각은 기성세대들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고, 이들이 사회연대경제 방법론을 통해 지역의 새로운 동력을 만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인구소멸 지역의 상당수는 소멸할 수밖에 없는데, 지금 우리의 정책은 어떻게 잘 소멸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는 없고 장밋빛 미래만 이야기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지역에는 이미 그곳을 지키며 살아온 주민들이 있기에, 그들이 도시민들처럼 다양한 인프라를 누리며 삶을 살아 갈 수 있는 방향으로의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의 청년 정책과 로컬 사업이 실제로 지역 주민들의 삶에 얼마나 닿고 있는지 먼저 물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박 상임이사의 통찰은 점프가 해온 청년 사업을 다시 바라보게 했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좋은 청년을 잘 모아 지역과 연결하면 청년도 성장하고 지역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도시 청년들이 지역에서 일하고 봉사한 서울시-행안부의 ‘청정지역’ 프로젝트, 고향을 떠난 청년들이 후배들의 멘토가 되는 ‘강원랜드 멘토링 장학사업’ 등을 통해 그런 가능성을 여러 번 확인했습니다. 하지만 늘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청년을 지역과 연결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청년 인재를 키운다는 것은 청년에게 무엇인가를 ‘해볼 기회’를 주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만 수행하는 사람이 아니라, 낯선 사람의 필요를 듣고 문제를 발견하며 서로 다른 세대와 협력하고 끝까지 책임지는 사람으로 성장하게 하는 과정이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로컬은 청년에게 매우 특별한 배움의 현장입니다. 교과서나 온라인 커뮤니티, 기획중심의 단기교육에서는 만나기 어려운 삶의 문제들이 구체적으로 존재하기에, 자신의 행동이 누군가의 일상에 영향을 미치고 그 과정을 통해 스스로 생각하며 성장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AI 시대에는 이런 역량이 더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점프는 ‘학교로 찾아가는 AI 교육 in 부산’과 같은 프로젝트를 통해 지역의 청소년들이 거주 지역에 따라 새로운 기술을 접하고 활용할 기회에서 뒤처지지 않도록 교육의 기회를 넓히는 사업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AI를 잘 다루는 능력만으로 미래 인재가 완성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기술을 활용하되 비판적 사고를 하며 문제를 정의하고, 이해관계자를 설득하면서, 협업을 통해 문제를 직접 해결해내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지역의 미래세대와 주민에게는 새로운 가능성과 기회를 연결하고, 청년은 새로운 기술과 보유한 역량으로 실제 사람들의 삶을 나은 방향으로 만들어 가는 것. 이것이 점프가 로컬과 청년, 교육을 연결하는 이유이며 목표입니다.

이런 문제의식에서 올 봄 점프는 지역의 사회연대경제 조직과 협업해 ‘전일제 청년봉사단’을 시작했습니다. 남양주, 용인, 청주, 대전에서 온 27살 동갑내기 청년들은 충북 옥천군 청산면에 장기간 머물며 지역의 일원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청산면 주민들은 청청아카데미 사회적협동조합을 통해 청년들을 돌보고 로컬에서의 삶의 지혜를 나눠주고 계십니다.


덕분에 이들은 청산지역아동센터 초중고등학생들의 선생님으로, 청산면 교평리 주민으로, 청산면사무소 2층 무료 사진관의 사진사로, 청산면 게이트볼클럽 명예회원으로, 옥천군 노인정/독거노인 도시락 배송사업의 배달운전기사로, 옥천신문 기자들의 친구로, 청산면 예곡리 할머니 텃밭 도우미로, 청산민속보존회 최연소 회원으로, 청산 기부카페 운영자로, 청산 국화축제 기획자와 실행자로, 그리고 각자의 미래를 준비하는 청년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청산면의 청년들은 성수동을 흉내 낸 로컬 공간을 운영하지도 않고, 화려한 문화사업을 펼치지도 않고, 외부 청년을 위한 근사한 체험프로그램을 기획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청산면 할머니들에게 웃음을 드리는 손주로, 청산주민협의회와 마을공동체의 든든한 일꾼으로, 이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의 손발로, 그리고 청산 초중고등학교 학생들의 롤모델로 마을과 주민들의 필요를 채우며 본인들도 성장하고 있습니다.


얼핏 평범해 보이는 이런 경험 속에서 청년들은 지역의 문제를 관찰하고, 관계를 만들고, 자신의 역할을 조정하는 법을 배웁니다. 지역은 청년에게 ‘기회의 대상’이 아니라 사람과 문제를 깊이 이해하며 성장하는 배움의 장이 되고, 청년의 성장은 다시 지역이 활용할 수 있는 새로운 자원이 됩니다. 청년들은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지역주민들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자신의 재능을 사용하며 성장하는 것입니다.


앞으로의 로컬 청년정책은 ‘몇 명의 청년을 지역으로 보냈는가’보다 ‘그 청년이 지역에서 무엇을 배우고 누구와 관계를 맺었으며, 지역에는 어떤 변화와 역량이 남았는가’를 더 중요하게 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창업, 공간 조성, 단기 체험도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청년 인재 육성과 지역의 지속가능성을 함께 만들기 어렵습니다. 청년이 충분한 기간 머물며 주민의 필요를 이해하고, 그것을 채우기 위해 지역의 사회연대경제 조직·복지기관·주민·행정과 함께 실제 문제를 해결해보는 경험이 더 많아져야 합니다.


로컬은 청년 취창업 문제의 해결지가 아니라, 서로 다른 삶을 만나고 배우며 자신의 역할을 발견하는 곳이어야 합니다. 지역의 필요와 관점에서 만들어가고 있는 경험이 어떻게 청년과 청소년을 변화시키고, 그렇게 성장하는 인재가 다시 지역의 가능성을 넓히는 구조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 대해 점프는 오는 9월21일 SOVAC 2026 행사장에서 여러분과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로컬’이 주제인 이번 SOVAC을 통해 로컬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우리 모두가 왜 이 일을 하고 있는지, 지역과 주민에게 필요한 로컬정책은 무엇인지, 그동안 우리는 무엇을 놓쳤는지, 어떻게 더 좋은 정책과 사업을 만들어 갈 수 있는지에 대해 보다 솔직한 토론을 시작해보기를 기대해 봅니다.


기고 : 사단법인 점프 이의헌 CWO(Chief Why Offic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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