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서비스 시장화 시대, 사회적경제조직의 존재 이유를 다시 묻다
*본 콘텐츠는 SOVAC Together 콘텐츠 파트너 사회적가치연구원(CSES)의 'VIEW' 아티클을 담고 있습니다.
돌봄사회서비스 분야에서 영리조직들과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 사회적기업의 일원으로서, 현재 사회적경제조직들이 직면한 환경을 돌아보고 이러한 상황 속에서 앞으로 사회적경제조직들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합니다.
많은 연구와 자료에 따르면 사회서비스 시장화 정책이 도입된 이후, 보건·의료·돌봄 분야에서도 영리조직의 시장 지배력이 빠르게 확대 되고 있습니다. 장기요양서비스 분야에서는 영리기업과 개인사업체가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으며, 제가 일하고 있는 요양보호사의 병원 파견과 간병 분야 역시 지난 10여 년 동안 영리기업의 대형화가 빠르게 진행되었습니다. 그 결과 일부 대형기업이 시장을 과점하게 되었고, 우리와 같은 사회적기업은 극소수만이 살아남아 힘겹게 명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더욱이 과거 사회적기업에 주어졌던 제도적 혜택도 사실상 효력을 잃었습니다
부가가치세법 시행령 제35조는 사회적기업과 사회적협동조합이 제공하는 의료보건 용역에 대해 부가가치세를 면제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방자치단체 입찰 및 계약 집행기준(행정안전부 예규 제324조)에 따르면 면세사업자 역시 부가가치세를 포함한 금액으로 입찰하도록 규정하고 있어, 사회적기업은 입찰 과정에서 법률이 보장한 혜택을 실질적으로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치열한 경쟁 환경 속에서 사회서비스 분야의 사회적경제조직은 앞으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며, 어떻게 지속가능성을 확보해야 할까요? 그리고 영리기업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단순히 더 효율적이고 더 경쟁력 있는 조직이 되는 것만으로 충분할까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먼저 한 가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회적경제는 왜 존재해야 하는가?
| 사회적경제는 왜 존재하는가
우리나라 사회적경제 담론은 주로 유럽 학자들의 논의를 바탕으로 발전해 왔습니다. 사회적경제 또는 사회연대경제라는 개념 자체가 유럽을 중심으로 형성 · 발전해왔고, 지금까지도 세계적으로 완전히 통일된 개념이 정립된 것은 아닙니다. 반면 미국에서는 '사회적경제'라는 표현보다 '제3섹터(Third Sector)' 또는 '비영리섹터(Nonprofit Sector)'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연구가 이루어져 왔습니다.
특히 미국 학자들의 제3섹터 연구는 사회적경제 또는 비영리조직이 자본주의 시장에서 왜 존재하는지를 경제학적·사회학적 논리로 설명해왔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추상적인 가치나 당위성을 이야기하기보다, 자본주의 시장에서 왜 제3섹터가 존재해야 하는지, 공공부문이나 영리부문과 비교해 어떤 장점을 가지는지, 그리고 국가가 왜 이를 제도적으로 인정하고 지원해야 하는지를 현실적인 논리로 설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와 관련한 고전적인 논의 가운데 하나가 존스홉킨스대학교 연구진이 수행한 비영리 부문에 관한 국제 비교 연구입니다. (Salamon, L. M., & Anheier, H. K. (1998). 「Social Origins of Civil Society」 : Explaining the Nonprofit Sector Cross-Nationally. Voluntas, 9(3), 213-248. 참조)
Salamon과 Anheier 등은 전 세계 각국의 비영리섹터에 관한 방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시장실패와 정부실패 이론, 신뢰이론, 복지국가이론 등을 토대로 18개의 가설을 설정하고 이를 검증하고자 했습니다. 예를 들어 정부실패 이론에 기반한 가설 가운데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었습니다. "정부의 사회복지 지출 수준이 높을수록 해당 국가의 비영리 부문의 규모는 작아질 것이며, 인구 구성이 다양할수록 정부가 다양한 수요를 충족시키기 어렵기 때문에 비영리 부문의 규모는 커질 것”이라는 가설입니다. 그러나 이들 가설은 통계적으로 충분히 입증되지 않았고, 연구진은 이를 대신하여 국가별 비영리부문의 차이를 설명하는 ‘사회적 기원 이론(Social Origins Theory)’을 제시하게 됩니다. 즉, 비영리 부문의 규모와 역할은 단순히 정부의 복지지출이나 시장의 규모만으로 설명할 수 없으며, 각 국가의 역사적·사회적·정치적 조건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 시장실패와 정부실패, 그리고 제3섹터
제3섹터의 존재 이유를 설명하는 또 다른 중요한 논의가 Steinberg의 경제학적 분석입니다. ( Steinberg, R., “Economic Theories of Nonprofit Organizations”, in The Nonprofit Sector: A Research Handbook, Second Edition, W. W. Powell & R. Sreinberg eds., 2006, Yale Press, pp. 117-139 참조)
Steinberg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시장실패와 정부실패의 관계를 통해 비영리조직의 존재 이유를 설명합니다. 먼저, 시장은 영리 추구를 우선하기 때문에 필요한 서비스가 충분히 공급되지 않거나, 경제적 여력이 부족한 사람들은 필요한 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또한 공급자와 소비자 간 정보 비대칭으로 인해 계약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도 생깁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직접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보조금과 바우처를 지원하고, 각종 규제를 통해 시장을 보완합니다. 하지만 정부 역시 형평성과 행정 효율성을 중시하다 보니 서비스를 표준화하고 획일적으로 운영할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다양한 이용자의 요구를 모두 충족하기는 어렵습니다.
Steinberg는 바로 이 지점에서 제3섹터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설명합니다. 비영리조직은 다양한 수요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고, 신뢰를 기반으로 정보 비대칭 문제를 완화할 수 있으며, 기부와 자원봉사 같은 고유한 자원을 활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시장의 한계를 정부가 보완하고, 정부의 한계를 다시 제3섹터가 보완하는 구조가 형성된다는 설명입니다. 이러한 논리는 오랫동안 제3섹터와 비영리조직의 존재 이유를 설명하는 중요한 이론적 근거가 되어왔습니다.
| 달라진 환경, 흔들리는 기존 이론
그러나 사회서비스를 둘러싼 환경은 크게 달라졌습니다. 신자유주의가 확산되고 사회서비스 시장화가 본격화되면서 점차 현실과 거리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과거에는 시장이 해결하지 못하는 영역을 정부가 맡고, 정부가 감당하지 못하는 영역을 제3섹터가 담당한다는 흐름이 일반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사회서비스 시장화 이후에는 오히려 정부가 담당하던 영역까지 시장으로 이전되는 현상이 광범위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오늘날의 사회서비스 분야에서는 정부의 실패를 제3섹터가 보완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의 역할 자체가 시장으로 이전되면서 사회적경제조직도 영리기업과 동일한 경쟁 환경 속에 놓이게 된 것입니다.
| 제3섹터의 역할을 다시 바라보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유럽 학자들은 제3섹터의 역할을 새롭게 바라보려는 시도를 제안했습니다. (The Third Sector in Europe - Globalization and Welfare series, 2004, A. Evers, Jean-Louis Laville eds., Edward Elgar Publishing 참조). 이들은 미국의 비영리섹터 개념과 달리 협동조합을 포함한 다양한 사회적경제조직을 제3섹터에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제3섹터는 개방성, 다원성, 유연성, 매개성, 역동성과 같은 특성을 바탕으로 다양한 자원을 조달하고 혁신을 만들어낼 수 있으며, 자체적인 신뢰와 자율조정 메커니즘을 통해 현대사회의 다양한 사회서비스 수요에 더욱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이러한 관점은 다원화된 현대사회에서 사회적경제의 존재 가치를 설명하는 의미 있는 틀을 제시합니다. 다만 이러한 주장이 제기된 이후 이를 더욱 발전시키거나 실증적으로 뒷받침한 연구는 아직 충분하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 이제는 역할을 다시 정의해야 한다
그렇다면 보다 근본적인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습니다. 신자유주의와 사회서비스 시장화가 일상화된 지금, 사회서비스 분야에서 사회적경제조직은 왜 존재해야 하며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
앞서 살펴본 것처럼 기존의 시장실패와 정부실패 이론만으로는 현재의 현실을 충분히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사회서비스가 시장화되고 영리조직이 경쟁 우위를 확보하는 상황에서 사회적경제조직의 존재 이유와 전략은 다시 정립될 필요가 있습니다. 국내에서도 사회서비스 시장화 이후 다양한 연구가 이루어졌습니다. 사회서비스 시장화의 문제점을 비판하거나(김종해, 2008, 「사회서비스의 시장화, 무엇을 위한 것인가?」), 공급체계의 변화을 분석하거나(함선유 외, 2024, 「사회서비스 공급기관 규모화와 사업체 특성 변화 연구」), 사회적경제조직의 공공성과 혁신성을 강조하거나(이인재, 2017; 안윤숙 외, 2019) 정책적 지원 확대를 제안하는 연구 (배정환, 2011, 「사회서비스 시장화와 사회적기업의 역할 확대」), 등이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연구들은 사회서비스 시장화의 문제점을 지적하거나 사회적경제의 공공성·혁신성·지역공동체성 등을 강조하는 데에는 의미가 있지만, 실제로 영리기업과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 사회서비스 현장에서 사회적경제조직이 어떤 차별화 전략을 가져야 하는지, 그리고 어떤 새로운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충분한 해답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 우리는 이제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 스스로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과연 사회적경제조직은 다양한 사회적 요구를 충족시키는 새로운 서비스를 만들어내고 있는가? 개방성과 유연성, 혁신성을 바탕으로 시장과 정부가 제공하지 못하는 가치를 창출하고 있는가? 정부의 사회서비스 정책과 사회적경제 정책은 이러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제도적 환경을 뒷받침하고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한다면 사회적경제조직은 시장에서 점점 더 설 자리를 잃게 될 것입니다. 결국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떻게 경쟁할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을 다르게 만들어낼 것인가’에 대한 고민입니다. 사회서비스 시장화가 더욱 확대되는 지금, 사회적경제조직의 존재 이유를 다시 정의하고 시대 변화에 맞는 새로운 역할과 전략을 정립해야 합니다. 지금은 위기의 순간이자, 사회적경제의 존재 이유를 다시 증명해야 할 전환점입니다.
글 : 김동준 본부장(다솜이재단) / 성공회대 대우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