끓는 지구, 그러나 아직 꺼지지 않은 엔진
*본 콘텐츠는 SOVAC Together 콘텐츠 파트너사 임팩트스퀘어의 IBR(임팩트 비즈니스 리뷰) 아티클을 담고 있습니다.
기후정책의 후퇴에도 저탄소 전환은 계속된다
미국·중국·유럽·한국에서 확인한 저탄소 산업 전환과 임팩트 비즈니스의 기회

폭염이 드러낸 기후위기의 불평등
2025년 여름 프랑스는 1900년 이후 세 번째로 더운 여름을 보냈다. 프랑스 공중보건국(Santé publique France)은 이 기간 폭염 관련 사망자가 5,700명을 넘어섰다고 집계했다. 전체 사망자의 3%를 웃도는 규모다. 피해는 에어컨이 없는 노후 주택에서 홀로 지내던 노인과 사회 안전망 밖의 취약계층에 집중됐다. 폭염은 모두가 겪지만, 그 피해는 사회적 취약성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기후위기의 심각성이 커지는 동안 정책 환경은 오히려 후퇴했다. 미국은 2026년 1월 파리협약에서 공식 탈퇴했고, 2월에는 연방 기후 규제의 법적 토대였던 '위해성 판단(Endangerment Finding)'을 폐기했다. 위해성 판단은 온실가스를 사람의 건강에 해로운 물질로 규정해 정부가 배출 기업을 규제할 수 있도록 한 조치다. 이를 폐기했다는 것은 연방정부가 스스로 규제의 근거를 거둬들였다는 의미다.
이 같은 변화만 놓고 보면 세계의 기후 대응이 역행하고 있다는 진단은 타당해 보인다. 다만 정책의 후퇴가 곧 산업 전환의 중단을 뜻하는지는 별도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실제로는 자본과 기술, 지방정부와 기업이 중앙 정치와 다른 속도로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중국, 유럽, 한국의 최근 변화를 비교하면 저탄소 전환을 떠받치는 동력이 어디에서 형성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미국: 정책 후퇴와 시장의 관성
트럼프 행정부는 화석연료 생산 확대를 선언했고, 2025년 7월 통과된 'One Big Beautiful Bill Act(OBBBA)'를 통해 청정에너지 지원을 대폭 축소했다. 바이든 정부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이 제공하던 태양광·풍력·배터리 투자 세제 혜택도 예정보다 일찍 종료되도록 했다.
정책 변화의 충격은 분명했다. 기업연대 단체 E2에 따르면 2025년 1월부터 2026년 5월까지 철회된 청정에너지 투자는 682억 달러에 이른다. 테네시에 건설할 예정이던 SK온의 28억 달러 규모 배터리 투자와 오하이오의 포드 전기차 공장 계획도 취소됐다.
그럼에도 미국의 저탄소 산업이 정책 변화와 같은 폭으로 위축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첫 번째 이유는 경제성이다. 2026년 7월 MIT 에너지환경정책연구센터(CEEPR)는 연방 보조금이 크게 줄어드는 시나리오에서도 IRA가 목표했던 청정 설비의 74%, 배출 감축 효과의 67%가 유지될 것으로 분석했다. 태양광·풍력·배터리의 가격 경쟁력이 이미 화석연료와 겨룰 수 있는 수준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보조금이 시장 형성의 출발점이었다면, 이제 투자를 지탱하는 것은 수익성이다.
두 번째 이유는 주정부의 역할이다. 캘리포니아와 뉴욕 등 20여 개 주가 참여한 '미국 기후 동맹(US Climate Alliance)'은 연방 정책과 무관하게 재생에너지 목표와 저탄소 규제를 유지하고 있다. 기업은 미국 시장에서 사업하려면 기준이 가장 엄격한 주에 맞춰 생산 체계를 운영해야 한다. 연방정부가 규제를 완화하더라도 주요 주의 기준이 기업의 의사결정에 계속 영향을 미치는 구조다.
세 번째는 지역 경제다. 친환경 투자의 상당수는 러스트벨트와 선벨트의 공화당 지역구에 집중됐다. 이들 지역에 들어선 배터리·재생에너지 공장은 일자리와 세수의 기반이 됐다. 텍사스와 오하이오의 공화당 의원들까지 백악관의 전면 폐지 방침에 반대한 배경이다. 저탄소 산업을 지킨 것은 이념보다 지역 경제의 이해관계였다.
정책은 선거 주기에 따라 바뀔 수 있다. 그러나 수익성이 확인되고 지역의 고용과 세수에 편입된 산업은 행정부의 결정만으로 되돌리기 어렵다. 미국 사례는 정책적 지원이 약화돼도 시장과 지방정부가 전환의 관성을 만들 수 있음을 보여준다.
중국: 규모가 만드는 저탄소 전환
중국 국가에너지국(NEA)에 따르면 2025년 말 중국의 전체 발전 설비에서 태양광·풍력·수력·원자력 등 비화석연료 발전이 차지하는 비중이 처음으로 60%를 넘어섰다. 석탄 비중은 사상 처음 절반 아래로 내려갔다.
이 변화의 의미는 발전 설비 증가에만 있지 않다. 중국은 태양광 패널, 전기차, 리튬 배터리로 불리는 '신(新) 3종 세트'의 생산망을 주도하고 있다. 재생에너지의 변동성을 보완하는 배터리 에너지저장장치(BESS) 역시 전 세계 설비의 절반 이상을 자국에 구축했다. 대규모 생산은 설비 단가를 낮추고, 낮아진 가격은 다시 세계 시장의 수요를 키운다. 미국의 정책 후퇴가 세계 기후 비즈니스의 중단으로 이어지지 않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중국의 공급망은 유럽 현지로도 확장되고 있다. 중국 최대 배터리 기업 CATL은 헝가리 데브레첸에 유럽 최대 규모의 배터리 공장을 건설했다. 중국 기업이 유럽으로 제품을 수출하는 단계를 넘어 '유럽 안에서, 유럽을 위해' 생산하는 구조로 전환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중국은 지금도 석탄발전소를 새로 짓고 있다. 재생에너지 공급이 부족할 때를 대비한 예비 전력이라는 설명이지만, 저탄소 전환의 속도와 진정성에 대한 문제 제기는 유효하다. 다만 세계 최대 배출국이 자국 산업의 미래를 저탄소 인프라와 공급망에 걸고 있다는 사실도 함께 봐야 한다. 중국의 과제는 방향보다 속도와 신뢰에 가깝다.
유럽: 규제를 산업 경쟁력으로 바꾸는 방식
유럽의 기후 정책은 규제와 벌금의 관점에서 주로 소개된다. 탄소국경조정제도(CBAM)가 대표적이다. 환경 규제가 느슨한 국가의 기업이 탄소 비용을 부담하지 않은 채 제품을 생산하면, 규제를 준수하는 유럽 기업은 가격 경쟁에서 불리해진다. 생산 시설이 규제가 약한 국가로 이동하는 탄소 누출도 발생할 수 있다. CBAM은 유럽으로 수입되는 제품에도 유럽 기업이 부담하는 수준의 탄소 비용을 부과해 이 차이를 조정하는 제도다.
CBAM은 새로운 시장 수요를 만든다. 유럽에 제품을 판매하려는 기업은 탄소 배출량을 측정하고 검증하며 줄여야 한다. 규제가 없었다면 전환에 나서지 않았을 공장도 유럽 시장에 접근하기 위해 생산 방식을 바꾸게 된다. 이 과정에서 탄소 측정·검증·감축 기술과 서비스의 수요가 커진다.
탄소 측정과 감축에 필요한 기술과 자본이 부족한 개발도상국에는 CBAM이 높은 진입장벽이 될 수 있다. UN무역개발회의(UNCTAD)는 CBAM으로 개발도상국의 소득이 약 59억 달러 감소하는 반면 선진국의 소득은 약 25억 달러 증가할 수 있다고 추산했다. CBAM을 '녹색 보호무역주의'로 보는 비판은 이 같은 불균형에서 출발한다. 개발도상국의 전환을 지원하는 금융과 기술 중개 역시 필요해진다. 임팩트 비즈니스가 규제를 비용이 아닌 사업 기회로 전환할 수 있는 지점이다.
한편, 유럽의 기후 정책이 규제에만 머무는 것은 아니다. 최근 유럽연합(EU)은 기후 전환을 산업 경쟁력으로 연결하는 데 정책의 무게를 옮기고 있다. 2025년 2월 EU 집행위원회가 발표한 청정산업딜(Clean Industrial Deal, CID)이 대표적이다. CBAM이 공급망의 탄소 비용을 조정하는 규제라면, 청정산업딜은 감축 산업의 경제성을 높여 기후 대응과 성장 전략을 결합한다.
EU는 청정 제조업에 단기간 1,000억 유로(약 150조 원) 이상을 투입하기로 했다. 청정 기술 기업이 국가 보조를 신속하게 받을 수 있도록 규정도 간소화하고, '산업 탈탄소화 은행' 설립도 추진한다.
산업계의 반응은 실제 사업에서 확인된다. 2026년 3월 결과가 발표된 '혁신기금 산업열 경매'는 공장에서 사용하는 열을 화석연료 대신 전기나 재생에너지로 전환하는 프로젝트에 10억 유로를 지원하는 사업이다. 철강·화학·제지 등 14개국 85개 기업이 참여해 신청 규모가 예산의 1.4배를 넘었다. 함께 진행된 수소 생산 경매에는 84억 유로 규모의 신청이 접수됐다. 정책이 제시한 방향에 기업의 투자 수요가 뒤따른 셈이다.
미국이 시장의 힘으로 전환을 이어가고 중국이 규모를 통해 비용을 낮춘다면, 유럽은 제도로 시장의 기준을 바꾸고 있다. 방식은 다르지만 저탄소 전환을 산업 경쟁력과 연결한다는 방향은 같다.
한국: 제조업 전환의 조건
한국 제조업은 이 변화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 국내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아직 10% 안팎에 머물러 있다. 발전 설비는 주로 영·호남에 집중돼 있지만 전력 수요는 수도권에 몰려 있어 공급과 수요의 지역적 불균형도 크다. 기업이 재생에너지로만 공장을 운영하는 'RE100'을 추진하려 해도 조달할 수 있는 재생 전력 자체가 부족하다.
정책 대응은 철강산업에서 먼저 나타났다. 2025년 11월 국회를 통과해 2026년 6월 시행된 K-스틸법(철강산업 지원 특별법)은 산업 경쟁력 강화와 탄소중립을 하나의 목표로 묶고, 저탄소 철강 인증제도와 저탄소 철강 특구, 국무총리 산하 특별위원회 설치 등을 담았다.
대기업은 이미 공급망 규제에 대응하고 있다. 포스코와 현대제철 등 유럽 수출 비중이 높은 철강사는 CBAM에 맞춰 '설비 단위 탄소 정보 관리 시스템(CMS)'을 자체 개발해 운영 중이다. 정확한 탄소 데이터가 있어야 CBAM 정산에서 불이익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포스코는 2050년까지 용광로를 수소환원제철 방식으로 전환하는 장기 계획도 수립했다.
남은 과제는 대기업의 전환이 중소 협력사까지 이어지도록 만드는 일이다. 대기업에 부품과 원자재를 공급하는 중소기업은 탄소 측정 역량과 컨설팅 비용이 부족해 공급망 밖으로 밀려날 수 있다. 정부의 탄소금융이 신용도가 낮은 영세 기업에도 실제로 도달하도록 설계를 보완하고, 중소기업의 탄소 검증 병목을 해결하는 서비스가 필요하다. 산업 전환의 취약한 연결고리가 새로운 시장이 될 수 있다.
임팩트 비즈니스가 개입할 지점
네 지역의 사례는 서로 다른 전환 동력을 보여준다. 미국에서는 경제성과 지역의 이해관계가 정책 후퇴를 완충하고, 중국에서는 생산 규모가 저탄소 기술의 가격을 낮춘다. 유럽은 규제를 통해 세계 공급망의 기준을 바꾸고 있으며, 한국은 수출 제조업을 중심으로 제도와 기업 대응을 시작했다. 자본의 흐름을 기준으로 보면 저탄소 전환의 방향은 이미 분명하다.
이는 '임팩트가 비즈니스의 경쟁력이 되도록 한다'는 임팩트스퀘어의 비전, 그리고 '더 많은 임팩트 비즈니스가 소비되도록 한다'는 미션과도 맞닿아 있다. 기후 대응은 더 이상 실현 가능성을 따지는 도덕적 구호만이 아니다. 이미 진행 중인 산업 전환이며, 남은 변수는 속도다. 이 속도는 새로운 규칙을 먼저 읽고 자본과 기술이 안착할 통로를 만드는 주체에 의해 달라질 수 있다.
실무 기회도 구체적이다. CBAM 정산이 본격화되는 2027년 이전에는 중소 협력사의 탄소 배출 데이터를 수집하고 검증하는 서비스가 필요하다. 대기업이 공급망 전체의 배출량을 입증해야 하는 상황에서, 데이터를 갖추지 못한 협력사와 이를 지원할 솔루션 사이에는 분명한 수요의 공백이 존재한다. 신용도가 낮은 영세 기업에 탄소금융이 도달하도록 금융 구조를 설계하거나, 유럽과 개발도상국 사이의 탄소 검증 병목을 해소하는 중개 서비스도 같은 맥락이다.
이러한 활동은 선의에 기반한 부수 사업이 아니다. 저탄소 전환이 실제 산업 현장에서 작동하기 위해 필요한 사업이다. 폭염의 피해는 이미 현실이 됐고 중앙 정치의 후퇴도 분명하지만, 시장과 기술, 지역과 기업의 움직임까지 멈춘 것은 아니다. 임팩트 비즈니스의 역할은 이 흐름을 관찰하는 데 그치지 않고, 아직 채워지지 않은 전환의 연결고리를 사업으로 만드는 데 있다.
작성 : 최나은 매니저(임팩트스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