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컨텐츠

SOVAC SOVAC 공식컨텐츠

[SOVAC Column] 소셜섹터의 성공 조건: 선함과 탁월함



“좋은 일 하시네요”

 

아직도 종종 듣는 말입니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들었던 말인데, 지금까지 듣고 있으니 30년은 족히 넘게 듣고 있는 말입니다. 이렇게도 생명력이 긴 말이니, 어쩌면 제가 일하고 있는 비영리 분야를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말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는 정확한 이유를 설명할 수 없었지만, 기분이 썩 좋지 않았습니다. ‘직업인’이 아니라 ‘봉사자’로 호명되는 어색함도 있었고, ‘잘함’이 아니라 ‘착함’으로 평가받는 것 같은 불편함도 있었으며, ‘전문성’이 충분히 존중받지 못하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 말에는 어려운 길을 선택한 사람을 향한 은근한 연민과 측은함이 함께 실려 있는 듯해 마음이 복잡해졌습니다. 또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말 그대로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한 제 안의 ‘자격지심’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경험이 쌓인 지금, 이 말을 들으면 오히려 어깨가 으쓱하고 기분이 좋아집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일이 있지만, 제가 하고 있는 일을 누군가 “좋은 일”이라고 불러준다는 사실 자체가 결코 가벼운 평가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다음세대재단은 “좋은 일”을 해 보겠다고 마음먹은 사람들과 조직을 지원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요즘은 ‘비영리 스타트업’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을 지금보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과 조직을 지원하는 일에 더욱 진심을 다하고 있습니다. 50여 개의 비영리 스타트업을 인큐베이팅하며 지켜본 결과, 경험적으로 분명하게 확인된 성공의 조건이 두 가지 있었습니다. 

 

바로 ‘선함’과 ‘탁월함’입니다. 이는 장대익 교수의 『공감의 반경』에서 말하는, 존경받는 조직과 사람의 조건인 ‘따뜻함’과 ‘유능함’과도 닮아 있습니다. 선하고 탁월하면 존경을 받습니다. 선하지도, 탁월하지도 않으면 무시나 경멸을 받습니다. 탁월하지만 선하지 않으면 질투의 대상이 됩니다. 선하지만 탁월하지 않으면 연민에 머무르게 됩니다. 다음세대재단이 “좋은 일”을 하는 사람들과 조직을 지원하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그것은 단순히 선한 의도를 유지하도록 돕는 데 그치지 않고, ‘선함’이 사회적 신뢰와 존경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탁월함’을 함께 갖추게 하기 위함입니다. 다시 말해, 존경받는 사람과 조직을 키우는 일이 다음세대재단의 중요한 역할입니다.

 

다음세대재단에서는 올해로 18년째 ‘체인지온’ 컨퍼런스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이 컨퍼런스는 소셜섹터에서 일하는 분들이 한 해를 돌아보고, 다가올 다음 해를 준비하며 함께 사유할 수 있는 공통의 ‘화두’를 던지기 위해 기획되었습니다. 지금까지‘각성’, ‘분투’, ‘사랑’과 같은 키워드를 제시해 왔고, 2025년에는 ‘탁월(卓越): 뛰어넘을 만큼 뛰어남’을 주제로 지난 11월 27일에 컨퍼런스를 개최했습니다. 

 

우리 앞에 놓인 사회문제를 ‘해결’하기에 앞서, 그것을 ‘뛰어넘기’ 위해서는 한 번쯤 깊고, 불편할 정도로 아프게 바라보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탁월함의 본질은 무엇인가?’, ‘탁월함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우리는 과연 스스로를 탁월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각자의 자리에서 해답을 모색해 보고 싶었습니다. 다섯 분의 연사와 네 분의 비영리 활동가들의 강의(링크)를 통해 얻은 통찰을 바탕으로, 저는 ‘소셜섹터에 요청되는 탁월함’을 다섯 가지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첫째, 탁월함은 타인과의 비교에서 출발하지 않습니다. 기준은 언제나 ‘이전의 나’입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혹은 우리 조직은 왜 이 일을 하고 있는가’와 같은 자기 성찰적 질문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그리고 지금 이 자리에서, 있는 힘껏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를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탁월함은 외부에서 주어지는 평가가 아니라, 자기 안에서 발견하고 길러내야 할 태도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둘째, 탁월함은 시간을 필요로 합니다. 지금은 고인이 된, 제가 좋아하는 시인 마야 안젤루는 “모든 위대한 성취에는 시간이 필요했다(All great achievements require time)”라고 말했습니다. 시간은 저절로 쌓이지 않습니다. 그냥 흘려 보내서도 안 됩니다. 의도와 설계가 담긴 시간, 다시 말해 ‘의도된 연습’의 시간이 축적될 때 비로소 탁월함은 모습을 드러냅니다. 

 

셋째, 탁월함은 용기 있는 도전 속에서 피어납니다. 두렵고 무모해 보이는 길일지라도, 첫걸음을 내디디는 순간 새로운 길은 열립니다. 만약 그 도전이 실패로 끝난다 해도, 우리는 미래를 준비하는 소중한 데이터 하나를 얻게 됩니다. 변화는 늘 불안을 동반합니다. 하지만 변화해서 생기는 불안을 선택하지 않으면, 변하지 않는 현실에 대한 불만을 늘 가지고 살아가게 됩니다. 

 

넷째, 탁월함은 학습 능력을 요구합니다. 말 그대로 배우고, 익히고, 다시 적용하는 힘입니다. 세상이 급변할수록 이 능력은 더욱 중요해집니다. 잘 모르는 것에 대해 호기심을 갖고, 직접 읽고, 보고, 경험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AI 시대를 살다 보니 우리는 모호함을 견디는 데 점점 서툴러지고 있습니다. 빠르고 즉각적이며 효율적인 해답을 원합니다. 그러나 탁월함은 종종 느리고 비효율적인 사유의 과정을 통해 길러집니다. 천천히 생각을 가다듬고, 역설적이게도 비효율적인 학습의 방식을 다시 설계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섯째, 탁월함은 결코 혼자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각자도생의 탁월함과 승자독식의 탁월함은 사회문제를 오히려 더 깊고 복잡하게 만들 뿐입니다. 함께 연대하며 키워내는 탁월함이 필요합니다. 느슨한 연결에서 출발해 구체적인 관계로 나아가고, 공동의 이익을 위해 연대하는 과정 속에서 탁월함은 증폭됩니다. 많아질수록, 분명히 달라집니다.

 

소셜섹터는 기부금, 공공 재원, 그리고 무엇보다 시민의 신뢰라는 자원을 기반으로 운영됩니다. 따라서 소셜섹터의 탁월함은 조직의 성과를 과시하기 위한 조건이 아니라, 사회적 신뢰에 응답하기 위한 책임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소셜섹터의 탁월함은 곧 이 사회가 스스로에게 요구하는 탁월함이기도 합니다. 2026년을 향해 나아가는 지금, 소셜섹터가 더 탁월해지기를, 그리고 그 탁월함이 더 많은 존경과 신뢰로 이어지기를 저와 다음세대재단은 계속 응원하겠습니다.


기고 : 다음세대재단 방대욱 대표

컨텐츠 정보
컨텐츠 정보
제목 [SOVAC Column] 소셜섹터의 성공 조건: 선함과 탁월함 등록일 2025.12.23
카테고리

비영리

출처 SOVAC
유형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