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V Hub 칼럼] 사회적 가치 측정의 수행성과 이해관계자별 역할

출처 : 사회적가치연구원 SV Hub (https://svhub.co.kr/)
글 :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강정한
* '제3회 대한민국 사회적가치 페스타'의 CSES 『민간이 열고 공공이 잇다 : 사회적가치와 성장의 새로운 공식, SVC』 세션에 참여한 패널의 칼럼입니다.
사회적가치연구원은 2015년부터 10년간 사회적 기업 및 소셜 벤처 기업 등이 창출한 사회적 가치를 화폐 단위로 측정하고, 그 성과에 비례해 보상을 지급하는 사회성과인센티브(SPC) 사업을 진행해왔다. 그리고 올해 노동부는 이러한 SPC 사업을 벤치마킹해 사회적 기업들을 대상으로 「사회적가치 창출 활성화 사업(Social Value Creation, 이하 ‘SVC’)」을 추진하고 있다. 400개 이상의 사회적 기업이 창출한 사회적 가치에 비례해 보상을 받는다니 반가운 소식이다.
다만, SVC 사업이 단년도 사업으로 추진되고 있으며 아직 내년도 시행 계획이 마련되지 않았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럼에도 정부가 SPC 사업의 지난 10년간의 실험과 성과에 주목하고 이를 정책적으로 채택해 실험에 나섰다는 점은 큰 진전이 아닐 수 없다. 이 글 에서는 이러한 진전이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지속되기 위해서 사회적 가치의 생산, 측정, 보상에 관여하는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지 몇 가지 제언을 하고자 한다.
SPC 10년의 실험이 보여준 수행성과 반수행의 가능성
제언에 앞서, 경제사회학적인 수행성(performativity) 개념을 간단히 소개하려 한다. 경제학적 모형이 시장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는 이유는 그 모형이 단순히 현실을 잘 반영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해관계자들이 그 모형을 받아 들이고, 이에 따라 의사결정을 하기 때문이다. 물론 경제학적 모형이 언제나 이러한 자아완성적인 선수행만 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시장 참여자들의 행동이 모형의 예측과 어긋나면서 오히려 그 예측을 무력화하는 반수행(counter-perform)이 나타나기도 한다. 이러한 반수행이 누적되면 기존 모형과 현실 사이의 괴리가 커지고, 새로운 모형이 등장할 수 있다. 경제학은 새로운 모형을 개발하고 이해관계자들이 새로운 모형을 받아들이고 의사결정을 할수록 새로운 모형의 수행성은 강해지고 기존 모형을 대체해 나갈 수 있다.
성과비례보상을 통해 사회적 가치 확산을 촉진하려는 시도 역시 사회적 가치 측정의 수행성을 전제로 한다. 즉, 더 많은 기업들이 자사가 창출한 사회적 가치를 화폐단위로 측정하는 방식을 받아들이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기업의 사회적 가치 창출 활동을 확대해 나간다면, 사회적 가치의 증진이 기업의 재무적 성과에도 도움이 되는 선순환이 실현되리라는 가정이다.
결국 사회적 가치의 재무적 환산이 기업에 얼마나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지는 측정 방식 자체의 정확성뿐 아니라, 얼마나 많은 기업이 측정과 보상 체계에 참여하고 그 결과를 활용하느냐에 달려 있다. 기업이 측정 결과에 따라 보상을 받고, 이를 다시 기업의 성장과 미래를 위해 투자한다면 사회적 가치 창출과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함께 높이는 선순환을 기대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사회적 가치 측정의 미래는 측정 방식의 정확성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측정 결과를 둘러싼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활용하며 실천하느냐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이처럼 사회적 가치 측정과 확산의 수행성을 인정한다면, 기업의 사회적 성과에 비례해 보상을 제공하는 사업의 성공적 정착은 선순행을 늘리고 반수행을 줄이기 위해 이해관계자들이 무엇을 점검하고 실천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지난 10년간의 SPC 사업은 수행성 관점에서 어떤 교훈을 남겼을까? 나아가 SVC 사업이 일회성 시도에 그치지 않고 지속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각 이해관계자가 무엇을 고민하고 준비해야 할까?
SPC 사업의 10년은 전기와 후기로 나뉜다. 두 시기 모두 참여 기업에 최소 3년의 성과비례보상을 제공했지만, 성과를 평가하기 시작한 시점에는 차이가 있었다. 전기에는 참여 첫해부터 기업이 제출한 성과지표를 평가해 보상했다면, 후기에는 첫해를 지표 제출과 준비를 위한 기간으로 두고, 1년간의 준비기간을 거쳐 2년 차에 제출한 성과지표부터 평가해 보상했다. 즉 최초 보상 시점이 전기는 1년 차, 후기는 2년 차인데, 이 둘 간의 차이는 참여 기업이 사회적 가치 측정 지표를 이해하고 준비한 경험의 여부다. 따라서 두 시가의 성과 차이는 사회적 가치의 화폐 단위 측정의 수행성을 엿볼 수 있는 차이다.
(중략...)
결국 성과비례보상 사업을 ‘참여가 늘수록 사회적 가치 창출이 확대되는 선순환’으로 발전시키는 것은 참여 기업, 측정 주체, 지원 주체 모두의 노력에 달려 있다. 이들은 측정의 타당성, 참여 확대의 효과, 장기적 보상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측정과 보상 체계를 기업 본연의 성과 창출 활동과 정렬시켜 나가야 한다.
역사적으로 볼 때 금융시장에 선물거래가 정착한 것은, 미래 곡물의 가치를 현재 어떻게 매길 것이냐는 문제에 대해 사회적 합의가 수행된 결과라 할 수 있다. 기업이 창출한 사회적 가치를 어떻게 측정하고 보상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에서 출발한 성과측정비례 보상사업은 아직 그 수행의 역사적 경로가 결정되지 않았다. 이 사업이 어떤 방향으로 발전할지는 앞으로 참여하는 기업과 측정·지원 주체들이 어떤 실천을 쌓아 가느냐에 달려 있다. 그 경로가 사회적 가치의 지속적인 창출과 확산으로 이어지는 데 이 글이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