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 년 사이 소비문화가 많이 달라졌습니다. 소비 주류 세대가 바뀌어 가고 있고, 온라인 상거래는 마켓의 대부분을 장악했습니다. 또한 사용하지 않는 물건을 판매하는 ‘리세일(Resale)’로 자연스럽게 마켓의 범위가 확장되었습니다. 리세일은 사회 전반에 깊게 뿌리내렸으며, 소비자들이 더는 새것에만 열광하지 않는 시대가 열렸습니다. 그런데 왜 리세일이 떠오르게 된 것일까요? 그 이유와 전망에 대해 알아봅니다. |
거대 플랫폼, 리세일과 손잡다
수공예품 거래 영역에서 아마존(Amazon)조차 따라잡지 못하는 독보적인 기업이 있습니다. 바로 ‘엣시(etsy)’입니다. 직접 만든 예술 작품, 액세서리 등을 P2P(Peer to peer)로 거래하는 플랫폼입니다. 2020년 9월 테슬라보다 먼저 미국 S&P500 지수에 편입되며 파란을 일으켰으며, 한때 시가총액이 50조 원을 넘기도 했던 주목받는 커머셜 플랫폼입니다.
그런데 엣시가 지난해 영국 중고 패션 거래사이트인 ‘디팝(Depop)’을 사들였습니다. 인수 금액은 16억 2,500만 달러로 한화 2조 원이 넘는 큰 액수입니다. 엣시는 디팝을 인수하기 위해 2년간 공을 들였다고 하는데요. 인수 금액은 당시 디팝 매출의 23배에 달할 정도였습니다. 디팝은 국내 대표적인 중고 거래 사이트인 중고나라나 당근마켓의 글로벌 버전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엣시의 디팝 인수는 글로벌 리세일 시장의 성장세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특히 패션업계에서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리세일’을 키우는 분위기가 뚜렷합니다. 미국의 대표적인 여성 캐주얼 브랜드 ‘메이드웰(Madewell)’과 의류 리세일 브랜드 ‘스레드업(ThREDUP)’도 손을 잡았습니다.
스레드업은 중고 패션 아이템을 팔고자 하는 소비자로부터 제품을 수집합니다. 이를 보관하고, 재판매를 위해 사진을 찍고, 가격을 책정하고, 배송·물류까지 책임지는 종합 중고 위탁 판매 플랫폼(Consignment Store)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Madewell Forever’라는 합작 온라인 플랫폼을 만들어 성장하는 시장 수요에 대응하고 있습니다. 메이드웰 매장에서 수거된 중고 청바지를 엄선해 재판매하고, 기부한 소비자에게는 할인쿠폰을 제공합니다.
리세일을 넘어 리커머스 시장을 형성하다
리세일을 번역하면 ‘재판매’입니다. 리셀(resell), 세컨드핸드(second hand) 등의 단어가 뒤섞여 사용되고 있는데요. 굳이 구분한다면 리셀은 한정판 운동화, 명품 등 희소성 있는 제품을 사서 웃돈을 받고 되파는 시장, 세컨드핸드는 일반적인 중고 시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이 전체적으로 ‘리커머스(Re-commerce)’ 시장을 형성하는 가운데, 중고품 거래를 ‘리세일’ 시장으로 이해하면 됩니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에 따르면 국내 중고 시장은 2020년 20조 원 규모로 2008년 대비 5배 성장했습니다. 세계 최대 재판매 사이트 스레드업은 리세일 시장이 지난해 350억 달러에서 2026년 820억 달러로 2배 이상 불어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습니다. 국내 대표 플랫폼인 네이버가 스페인 중고 거래 플랫폼 ‘왈라팝(wallapop)’에 1,567억 원을 투자한 것도 이 같은 성장세를 염두에 뒀기 때문입니다.
지속가능성에 대한 관심이 리세일 시장을 키우다
지금까지 소비자는 새 제품을 선호한다는 것이 전형적인 인식이었습니다. 그런데 리세일 시장이 급속히 성장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첫째,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며 ‘지속가능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는 점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몇 년째 입지도 않는 옷들로 가득 찬 옷장을 들여다보며 무슨 생각을 하시나요? 혹시 다른 사람에게 잘 어울릴 만한 옷이 옷장에서 쓸모 없게 낭비되는 것은 아닌지 고민한 적 있나요? 입지도 않는 옷을 만드느라 지구환경을 얼마나 해쳤을까 안타까운 마음이 든 적은 없나요?
중고 거래는 이 같은 불편한 마음을 해소할 수 있는 적절한 방안이 됐습니다. 글로벌 스포츠웨어 브랜드 룰루레몬(Lululemon)은 지난해 지구의 날(4월 22일)을 맞아 텍사스와 캘리포니아 일부 매장에서 시행하던 재판매 프로그램(Lululemon Like New)을 미국 전역으로 확대했습니다.
고객은 결함이 없거나 착용 흔적이 양호한 상태인 의류와 액세서리를 제공하고, 향후 구매에 활용할 수 있는 포인트를 받습니다. 수거된 중고 제품은 선별해 재판매하고, 이 프로그램으로 벌어들인 수익의 일부는 기부됩니다. 이 같은 변화가 계속된다면 ‘리세일 패션’이 ‘패스트 패션’보다 커지는 날이 머지않아 도래할 것 같습니다.
희귀 아이템과 미니멀 라이프 추구에 매력 느끼는 Z세대
둘째, Z세대(1995~2010년 태어난 세대)가 개성을 추구하고 합리적으로 소비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점도 리세일 시장의 성장을 부추겼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Z세대는 희소가치가 높은 중고품을 보유하는데 더 특별한 매력을 느낍니다. 또한 비우고 처분하는 과정 자체에서 오는 즐거움을 얻기 위해 중고 거래에 나서지요. 중고 거래가 ‘트렌디한’ 취향이자 라이프스타일로 자리 잡은 것입니다.
같은 맥락으로 굳이 새 제품을 구매하기 위해 비싼 가격을 지불할 필요가 없다는 인식이 높아졌습니다. 소유보다 경험을 중시하는 Z세대는 새 제품을 비싸게 사서 죽을 때까지 보관하는 것을 낡은 사고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당근하다’, ‘N차 신상(여러 번 사용해도 새 제품)’, ‘바이콧(Buycott·보이콧과 반대되는 개념으로 어떤 물건을 사도록 권장하는 행위)’ 같은 용어들은 젊은 층이 ‘중고’를 바라보는 태도를 보여주는 단어입니다.
온라인 플랫폼 기술이 발전하며 활성화 되다
셋째, IT 플랫폼 기술 발전이 배경에 깔려 있습니다. 이는 국내에서도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2003년 네이버 카페로 출발한 중고나라가 우리나라 중고 거래 시장의 시초였다면, 동네 기반 플랫폼으로 신뢰를 더한 당근마켓은 중고 거래를 활성화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중고 거래 플랫폼 누적 회원 수는 2021년 12월 기준 중고나라 2,400만 명, 당근마켓 2,200만 명, 번개장터 1,650만 명에 이릅니다.
최근 들어 중고 의류, 중고차, 중고폰 등 제품별로 다양한 중고 거래 플랫폼이 등장하며 시장을 키우고 있습니다. 크립토사이클(Cryptocycle) 회장 겸 공동설립자인 토니 맥걸크(Tony McGurk)는 포브스와의 인터뷰에서 “블록체인 기술로 의류를 포함한 모든 아이템의 라이프 사이클을 추적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중고 제품 거래도 재테크가 될 수 있다는 인식의 변화가 시장을 키웠습니다. 일례로 운동화 리세일 시장은 ‘리세일테크(Resale+재테크)’, ‘슈테크(Shoes+재테크)’라고 불릴 만큼 재테크 수단으로 급부상했습니다. 뉴욕의 디자이너 제프 스테이플과 나이키가 150족만 제작해 200달러에 판매한 시리즈(덩크SB 로우 스테이플 NYC 피죤)는 7,000만 원까지 가격이 치솟기도 했습니다.
거래 신뢰도 향상과 가품 검수 강화는 앞으로의 과제
리세일 시장의 빠른 성장이 예상되지만, 헤쳐 나가야 할 과제도 많습니다. 무엇보다 거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제품 검수 기능이 강화되어야 합니다. 중고 거래 플랫폼에서 가짜(짝퉁) 상품이 거래되지 않도록 신경 쓰는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최근 디지털 인증서로 꼽히는 NFT(대체불가능토큰)를 활용하자는 주장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NFT는 소유권과 판매 이력 등의 정보가 모두 블록체인에 저장되므로 등록, 판매, 소유권 등의 정보 위조가 불가능하지요. 소비자 간의 거래에서 사기가 발생하지 않도록 ‘안전 거래’도 강화해야 합니다.
이처럼 리세일 시장은 성장에 비례하여 해결해야 할 과제 역시 적지 않으므로, 문제점들을 하나씩 해결해 나가면서 실용적이고 합리적인 리세일의 시대를 만들어 나가야 할 것입니다.
글. 명순영(매경이코노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