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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V Hub 칼럼] 닫힌 공감, 선택적 공감… 공감의 수준을 높여야 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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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04 13:54:51 35 읽음


글.  키자미테이블 대표 엄소희

출처 :  사회적가치연구원 통합플랫폼 SV Hub




2012년 3월 2일, 케냐행 비행기를 타고 떠나 2022년 1월 9일 우간다발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 들어왔다.

아프리카에 발을 들인지 꼬박 10년이다. 지난 10년간 아프리카에 머무르거나 오가며 지내왔고, 앞으로도 일과 취미와 관심의 방향을 아프리카에 둘 생각이다. 


필자는 해외 봉사로 아프리카 두 개 국가에서 3년을 지냈고, 그 경험을 통해 발견한 사회문제-아프리카 청년들의 일자리와 사회/경제적 자립-를 해결하기 위해 2018년부터 아프리카 현지에서 비즈니스를 하고 있다. (특정 국가를 언급하지 않는 이유는 아프리카 내 더 많은 국가로 사업을 확장하고 싶은 욕심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일을 하고 있노라며 이야기를 하면 열 명 중 대여섯은 비슷한 질문을 한다. “국내에도 사회적 문제가 많은데, 왜 굳이 다른 나라에 가서 사회적기업을 하는 건가요?” 어쩌면 이 글은 그 질문에 대한 다소 장황한 답변이다.




▲ 키자미테이블 매장 직원들 모습




모두가 가진, 하지만 모두가 다른 공감 능력

다양화, 파편화된 현대사회에서 폭넓은 문제 해결능력을 갖기 위해서는 공감 능력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하곤 한다. 하지만 공감은 그리 특별한 능력이 아닐 수 있다. 상대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는 사이코패스 범죄에 온 사회가 분노하는 이유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을 가져야 한다’는 전제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모두가 이미 갖추고 있는 ‘공감’을 새삼스레 미래사회에 필요한 인재의 자질로 꼽는 이유는 무엇일까?


심리적 상태를 느끼고 행동하게 하는 공감 능력은 비단 사람뿐 아니라 동물, 또는 무생물에 발휘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애견인이라면 같은 아파트에 사는 주민의 교통사고보다 길거리 유기견의 교통사고를 더욱 안타깝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확인할 수 있는 공감의 발동 조건은 ‘관심’이다.


따라서 공감의 범주는 곧 관심의 범주를 보여준다. 관심의 범주는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내가 인지하고 신경 쓰는 세계의 범주이기도 하다. 객관적인 세계의 구성과 소속과는 별개로,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머릿속에 자신만의 ‘재조합된 세계’를 가지고 있다. 내가 교류하고 함께 생활하는 사람들, 나의 일상, 내게 중요하고 소중한 것들… 이것을 떠올리는 과정에서 내가 인지하고 있는 ‘나와 세계의 연결’이 어디까지인지 확인해 볼 수 있다.



(중략...)



공감의 수준이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미래의 수준

모든 사람이 세상 모든 문제에 대해 눈에 불을 켤 필요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자신이 어디에 속해있고 연결되어 있는가에 대한 공감 능력-나와 연결되어 있는 사람과 사회를 알아차리는 인지 능력-만큼은 키울 필요가 있다. 


내가 나의 역할과 소명에 충실할 수 있는 이유는 다른 사람 또한 그의 역할을 다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아프리카의 청년 문제에 매달리고 있을 때, 환경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기술을 개발하고, 정책을 세우고, 캠페인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역 불균형을 해결하기 위해, 여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고심을 하고 발로 뛰는 사람들이 있다. 소위 이야기하는 ‘글로벌 소셜벤처’, ‘글로벌 사회적기업’이 한국의 울타리 너머에 있는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열심일 수 있는 것은, 적재적소에서 다양한 문제 해결을 해나가는 다른 사람이 있다는, 우리 사회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사이의 이 거대한 연결망을 무관심의 연결망으로 둘지, 관심과 연대의 연결망으로 둘지에 따라 우리 미래가 달라진다. 관심과 연대의 연결망은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회복과 선순환의 연쇄작용을 가져온다. 우리 사회가 더 나은 사회가 되길 바란다면, 우리의 미래가 더 지속가능한 모습이 되려면 관심과 연대의 연결망을 강화하는, 공감 능력이 필요하다. 


공감 능력을 가졌다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공감의 수준을 넓히고 높여나가야 한다.

 공감의 수준이 사회화의 수준이고 시민의식의 수준이다. 그리하여, 공감이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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