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 「지역에서 사람이 성장하려면, 다 하지 못한 이야기」는 지난 9월, 대한민국 사회적 가치 페스타에서 현대해상과 임팩트얼라이언스가 진행한 ‘지역에서 사람이 성장하려면’ 세션의 연사들이 미처 다 전달하지 못했던 생각을 심도있게 다룰 목적으로 임팩트서클과 멘토리가 함께 기획했습니다. (관련기사: 지역 문제 해결의 주어, '사업'이 아닌 '사람'이 되어야) 인터뷰 진행은 임팩트스퀘어 정보라 매니저와 사회적협동조합 멘토리 권예원 수석디렉터가, 정리는 소임리포터로 활동하는 정보라 매니저가 맡았습니다.
첫 번째 기획 인터뷰에서는 크립톤 전정환 부대표를 만났습니다. 전정환 부대표는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장으로 지내며 지난 7년동안 창업생태계 실천커뮤니티를 만들었습니다. 현재는 제주지역 전반을 아우르며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번 인터뷰에서는 경계를 허물며 커뮤니티 안에서 성장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창업생태계에서 시니어로서 역할과 관점을 중심으로 청년들이 커뮤니티 안에서 주도적으로 성장하기 위한 구체적인 전략과 커뮤니티가 제공하는 자원의 역할을 이야기하며 청년 성장의 본질을 탐구합니다.
<글 싣는 순서>
1. 인터뷰/크립톤 전정환 부대표
2. 인터뷰/디쓰리쥬빌리파트너 정원식 심사역
3. 인터뷰/윙윙 이태호 대표
4. 인터뷰/코끼리공장 이채진 대표
5. 기고/사회적협동조합 멘토리 권예원 수석디렉터
6. 염지현의 시선/소셜임팩트뉴스 염지현 기자
* 순서와 내용은 바뀔 수 있습니다.
시니어로서 정환님의 역할과 관점
정보라 매니저(이하 보라) : 사회적 가치 페스타가 끝난 뒤 두 달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나요?
전정환 부대표(이하 정환) : 어느새 두 달이 지났군요. 저는 그동안 전주에서 글로컬 상권 창출 사업의 일환으로 전주 원도심 1km 반경 내를 창의적인 동네로 만드는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9월부터 본격적으로 사업이 시작돼 바쁘게 하루하루 보내고 있었습니다.
보라 : 세션에서 청년 세대가 시대별로 사회문제 해결의 주체가 됐음을 언급하셨습니다. 프랑스의 68세대, 미국의 히피 세대, 우리나라의 86세대 등 과거의 청년 역할을 해석하며 의미를 부여하셨는데요. 현재 지역 중심의 활동을 통해 만나는 청년 세대의 흐름과 활동의 의미를 동료이자 선배로서 어떻게 해석하고 계신지 더 자세히 듣고 싶습니다.
정환 : 단기간에 대한민국의 고속성장을 거친 청년 세대와 현 세대의 가치관과 경험이 다르기 마련입니다. 우리나라가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이 되는 과정에 청년기를 보낸 사람들은 경제적 성취를 이루고 서울로 가는 과정이 익숙하다면, 그 사람들의 자녀는 선진국의 상황에서 본인의 꿈, 커리어를 펼쳐나가야 하는데 쉽지 않습니다. 한 가정에서 다른 세대간의 차이가 있다면, 서울에서 자리잡은 기성세대의 자녀와 자리잡지 않은 기성세대 자녀 사이 양극화가 있기도 한 상황입니다. 지금 변화의 과도기에 놓여있다고 생각합니다. 사회가 발전을 하면서 사람의 행복에 대한 고민을 했는지 묻고 싶어요. 성취를 이룬 기성세대는 행복할까요? 그 세대는 경제 성장에만 집중하다보니 다른 기회들이 창출되지 않았습니다. 대표적인 결과가 지역이죠. 다양하고 창의적인 일을 할 기회가 없어진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지역이 점점 창의적인 일을 만들어가는 공간이 될 수 있다면 어떨까요. 처음부터 완벽할 수 없겠지만 꿈꾸는 세상이 있어요. 기성세대들도 창의적이고 다양한 일을 만들어가는 변화에 참여하면서 연결되고 스스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지속가능한 세상을 꿈꾸고 있습니다.
보라 : 나라나 문화에 따라 지역 소멸 양상이 조금씩 다른 것 같습니다. 그 문제를 풀어가는 방법 역시 나라마다 다르고요. 우리나라는 하드웨어 중심으로 바꾸는 특수성이 있지만, 지역의 프론티어 활동가 커뮤니티 중심으로 바꿔보는 움직임도 있는 것 같습니다.
정환 : 일본은 근대화시기를 200년에 걸쳐 성장해왔지만, 우리나라는 단기간 압축성장하며 급격한 고령화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신도심을 만드는 양상을 띄고 있어요. 책 「강남의 탄생」에서 강남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알 수 있는데, 고속터미널, 공공기관, 명문고등학교를 옮기면서 강남구가 부흥해요. 한 지역이 성공하고 나니 지방도시에서는 신도심을 만들어 부상하는 그 사례를 따라하고 싶은거죠. 그렇게 하드웨어, 인프라 중심의 신도심 개발 형태가 자리잡게 됐습니다. 그러나 원도심의 기능이 다 신도심으로 옮겨져 급격히 쇠퇴하게 되고요. 지역은 그 지역 뿐만 아니라 주변 지역과 교류를 하며 발전해왔는데, 이젠 신도심에 모든 걸 갖추고 있으니 허브에 모일 이유가 없어집니다. 예를 들어, 과거 익산 거주자는 전주 원도심에 모여 만나기도 했는데 이제는 그럴 필요없이 서울로 바로 가게 되는거에요. 지역의 도시는 점점 정체성을 잃고, 사람 사이 교류가 줄어드니 창의적인 게 창출되는 기능을 잃어버리고요. 그러면서 지역간 교류가 줄어들고 지역 불균형, 세대간 기회 창출 격차가 생겨나기 시작했다고 생각해요.
보라 : 지역에 거주하는 청년들은 수도권으로 이동하지 않고도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원하고 있습니다. 각기 다른 양상을 요구하는 청년의 니즈를 고려할 때, 커뮤니티 프로그램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는 중심 가치(코어 밸류)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또한, 이를 중심으로 부가가치를 제공하는 구조를 어떻게 구상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정환 : 연결고리가 있는 곳에 가야 새로운 연결을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전주 글로컬 소셜 레지던시(중기부 전주 글로컬 상권 활성화 프로젝트) 중 체류프로그램을 통해 한 여행작가를 만났습니다. 작가는 지난 30년동안 국내외를 여행하며 글을 썼다고 소개했는데요, 그가 전주에 열흘 동안 머물며 나눈 소감이 인상 깊었습니다.
그는 “저는 지난 30년 동안 그 지역의 인프라만 보고 글을 썼던 것 같아요. 전주에서 사람을 만나면서 전주에 살아보고 싶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여태 써온 글에는 ‘나 ’가 빠져있었지만, 이 기회를 통해 ‘나’를 중심으로 생각하게 됐습니다”라는 소감을 전했습니다.
인프라 중심의 개발과 반대되는 가치를 담고 있는데요. 사람과의 관계에서 그 지역에 살고 싶어지는 동기를 얻는 것 같아요. 물론 그 지역에 일자리가 없는 등 현실적인 문제를 마주할 수 있지만, 요즘 원격근무 등 일의 형태도 다양해지면서 가능성이 있기도 해요. 이 사례를 통해 커뮤니티에 대한 요구를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보라 : 인간의 속성, 인간의 본질을 파고드는 요구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네요.
정환 : 물론 지역에 힐링을 목적으로 가는 사람들도 있지만, 힐링여행을 가는 사람은 특징이 있어요. 대도시 삶에 지쳐야 갑니다. 제주도에 와서 한달 쯤 지내고 회복이 되면 다시 서울로 가죠. 오히려 ‘힐링’보다는 ‘리트릿’, 내가 창의적인 일을 찾는 관점으로 접근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창의적인 일을 위해 다른 장소를 찾고 다른 사람을 만난다는 관점으로 지역을 바라보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지역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관심갖고 지역으로 가는 사람은 사람과 연결되고 함께 영향을 미치는 공동체, 커뮤니티 안에 들어가 성장하는 기회를 찾는 분들도 있어요. 그런 사람들이 지역에 변화를 만들거라고 믿고 있습니다.
권예원 수석디렉터(이하 예원) : 제주도에서 제주도민의 자본으로 투자조합을 만드셨고, 목포 등 다른 지역에서도 시니어가 청년에게 자본을 기꺼이 내어주는 사례를 보셨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청년끼리만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주기’가 가능한 세대간의 연결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게 바로 좋은 커뮤니티의 힘이 아닐까 싶은데요. 지역의 시니어는 어떤 것을 바라고, 어떤 확신이 들 때 자신의 자본을 청년에게 내어주게 되는지 궁금합니다.
정환 : 현실적으로 청년에게 자본을 기꺼이 내어주는 시니어가 많지 않은 게 사실입니다. 「커뮤니티 자본론」에 사례(185p)로 소개하기도 했는데요. 목포의 스테이 카세트플레이어 청년 대표를 도와준 벤처사업가 이야기가 있습니다. ‘먼저주기’를 실천하는 시니어는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살 것인가에 대해 삶을 돌아보는 과정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경제적 성취를 함께 이뤄온 주변인처럼 한 곳만 바라보기보단,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려 여행도 하고, 제주도에 살아보기도 하고, 비영리재단에서 일해보기도 하면서 어떤 일을 할 때 자신이 행복할지에 대한 고민을 하면서 청년 창업가가 성장할 수 있도록 시니어로써 함께 협업하기까지 오게 된 거라 생각합니다. 사실 86세대는 경쟁을 하며 살아온 세대라 그렇게 행복하지 않을지도 몰라요. 행복에 대해 자문하는 계기 조차 없었을 수 있고요. 그 세대를 위해 자신을 돌아보고 삶에 대한 서사를 적어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 많이 생기면 좋겠습니다. 프로그램에 참여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스스로를 깨닫고 무언가 해야 겠다는 계기를 마련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예원 : 지역 활성화를 위해선 모든 세대가 어우러져야 하는데, 아무래도 생산가능인구 관점으로 보았을 때 지역은 청년을 유치해야 하니 청년을 불러 모을 수 있는 정책이나 사업에 집중하는 것 같아요.
정환 : 개인적으로 행정안전부 청년마을 사업에 조금 한계가 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생각하는 한계란, 너무 청년을 선봉에 세워 그들에게 책임이나 부담을 지우는 게 아닌가라는 개인적인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청년마을 참여 청년을 통해 시니어의 변화를 만들고 지역에 임팩트를 주고 있거든요. 청년마을의 단기적인 사업 목표 외에도 다양한 영향을 주고 받고 할 거에요. 그렇기에 사업의 주체를 청년만 둘 게 아니라, 다양한 지역 주체를 고려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원도심에 청년이 부족해 고령화가 됐다고 해요. ‘그럼 청년을 다시 원도심으로 유치시키자’고 접근할 수 있겠죠. 그런데 이때 원도심을 주로 이용하는 어르신에게 집중할 수도 있어요. 청년을 뒤로한 채 문제정의를 ‘어르신에게 익숙한 공간인 원도심을 더 접근성이 좋게 만들어보자’로 하는 거죠. 그러면 시니어 타운이나 요양병원을 원도심에 유치하고 그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 중엔 청년이 많겠죠. 그러면 자연스럽게 생산가능인구 청년이 원도심에 자리잡게 될 테고요.
결과적으로 우리가 원하는 것은 다양한 세대가 공존하고 그들 간에 서로 연결되는 동네를 만드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청년들이 커뮤니티 안에서 주도적으로 성장하기 위한 구체적인 전략 & 커뮤니티가 제공하는 자원의 역할
보라 : 「커뮤니티 자본론」에서 “10년 이상의 중장기 방향을 잘 잡고 3년 이상 꾸준히 하면 불가능해 보였던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하며, 10년이 지나면 인정받는 변화가 될 것”이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대한민국이 현재 지역소멸의 위기에 놓인 상황에서, 단기적이고 분절된 정책에서 연속성을 가지기 어려운 환경으로 보이는데요. 이를 연속성 있게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요.
정환 : 정책의 언어로 가면 다양한 대상을 아우르는 세련된 정책이 나와야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어느 국가든, 공공의 속성은 어쩔 수 없이 대상을 나누게 됩니다. 공공이 변화하길 바라지만, 민간보다는 느리다는 걸 인정하고 지금 우리가 활용할 수 있는 것을 찾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공공에서 원하는 성과나 예산이 어떻게 구성돼 있지만, 우리가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인지 핵심 비전을 명확히 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대한민국 사회적가치페스타 같은 행사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이걸 왜 하고 있는지 의미를 계속해서 정의하고 되새겨야 해요. 사업을 하다보면 자주 잊게 되어요. 꼭 성과로 보여주지 못하는 이질적인 의미를 되새기면서 장기적인 변화의 촉매가 된다고 믿습니다. 시스템과 행정은 단기간에 바뀌기 어렵습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기성세대 혹은 공공이 지금 당장 내 가치와 맞지 않다고 생각하더라도 내가 하는 일의 의미를 꾸준히 확인하며 하다보면 10년 뒤에 반드시 성과가 나올 거고요. 그리고 우리 동료들 중에서 누군가는 좀 더 영향력있는 자리에 위치하면서 새로운 걸 만들어간다고 생각합니다.
예원 : 지역 문제는 긴 시간이 필요한 영역이고, 특히 대한민국 역사 속에서 오랜 기간 지속된 문제라 장기적인 관점과 인내심이 필요하다고 보입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상황을 버텨야 하는 경우가 많을 텐데, 여러 지역의 플레이어와 관계맺고 그들의 성장을 돕는 입장에서, 각 지역에서 ‘티핑포인트’를 실감했던 순간이 있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정환 : 티핑포인트를 넘었다가도 정체되기도하고 다시 앞으로 가기도하고. 복합적응계가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제주 창업 생태계 조성을 2015년에 시작해서 3년 차가 될 때부터 현장에 있던 저는 물론, 직원의 변화를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하면서도 ‘이게 맞아!’라고 확신하면서, 동시에 ‘과연 잘하고 있는 걸까?’라는 의문이 들기도 했거든요.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가 개관한지 2년 차에 센터가 없어질 위기가 있었는데, 제주도 청년과 창업가들이 ‘전국의 창조경제혁신센터가 사라지더라도 제주에 창조경제혁신센터는 필요하다’고 말해줬습니다. 내가 하고자 하는 것과, 그 생태계 내의 플레이어들이 같은 꿈을 꾸기 시작한 커뮤니티가 생긴 거예요.
대전 유성구에 어궁동(어은동, 궁동)에 대한 사례도 있습니다. 어궁동은 커뮤니티엑스웨이 방식으로 동네를 구성하고자 제게 자문을 구했어요. 기존에는 문화기획자나 사회적경제 종사자를 중심으로 커뮤니티 구성을 해왔다면, 이제는 스타트업이나 기술 분야로 경계를 넘어 교류를 늘려볼 것을 말씀드렸어요. 기존에 충남대 출신 로컬크리에이터 커뮤니티만 있었다면 카이스트에 접점을 만들어보기도 하고요. 유성구청이 어궁혁신포럼을 만들면서 연결에 엔진이 되었고, 그동안 단절돼 있던 테크와 로컬 커뮤니티가 연결되기 시작했어요.
한 행사가 꾸준히 한 공간에서 열리니 서로 어떤 일을 하는 지 알게되면서 서로 필요를 찾고 더 긴밀하게 협업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제가 PM으로 참여하는 전주 글로컬 상권 활성화 사업에서도 기존 커뮤니티를 연결해 새로운 우연과 기회를 만들고 있어요. 서로 교류한 적 없는 커뮤니티를 엮어 사업으로 만들고 있는데 이를 통해 1~2년 내에 티핑포인트에 도달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커뮤니티엑스는 각각의 커뮤니티가 X자 모양으로 서로 지나가며 새로운 커뮤니티가 발생하게 되는 건데요. 사실 운좋은 우연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일어날지 몰라요. 그러나 계속 발생하기 마련이고요.
▶소셜임팩트뉴스 기사 원문 보기: https://www.socialimpactnews.net/news/articleView.html?idxno=3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