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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VAC Archive] 블랙프라이데이? 쇼핑 멈춰! 새 옷 아닌 새로운 옷 경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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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25 04:22:00 197 읽음

위기의 시대, 비영리에서 기회를 찾다 ㉑ 다시입다연구소 정주연 대표
의류 수명 늘리고 의류 폐기물 줄이는 일에 앞장서는 다시입다연구소
수선과 교환의 즐거움 알리고, 지속가능한 슬로 패션 문화 전파하는 사람들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지금 당장 사지 않으면 큰일 날 것 같은 광고 문구가 쏟아진다. 사고 싶었던 물건을 최대 90% 할인 가격으로 살 수 있다고 하니 없던 소비 욕구도 차오른다. 모두 ‘블랙프라이데이’ 때문이다. 

블랙프라이데이. 줄여서 ‘블프’라고 부르는 이 시즌에는 재고가 되지 않으려 몸부림치는 다양한 품목의 제품들이 세일가로 판매된다. 특히 최신 유행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디자인이 변하는 의류 산업은 이 시기를 놓치지 않으려 세일 상품을 쏟아낸다. 1~2주마다 한 번씩 신상품을 내놓는 패스트 패션 문화를 따르는 기업일수록 이때 선보이는 세일 상품이 많다.

소비자 입장에서 1년에 한 번 찾아오는 이 기간을 적극 활용하는 게 문제가 될까? 이왕이면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와 ‘가심비(가격 대비 만족도)’를 모두 만족할 수 있는 소비 기회니 말이다. 그런데 모든 할인에는 다 이유가 있다. 이윤을 남겨야 먹고사는 기업에서 손해를 보진 않을 터. 지금까지 미처 알지 못했던 사정을 들여다 볼 기회다.

올해 블랙프라이데이에는 계획에 없었던 충동적인 소비를 하기 보다, 블랙프라이데이와 관련해 우리가 놓치고 있는 가치를 정비해 보고자 한다. 특별히 패스트 패션 문화를 지양하고, 반대로 슬로 패션에 대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 사단법인 다시입다연구소 연구원들을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다시입다연구소는 지속가능한 의생활 문화 구축을 위해 지난 2022년 설립된 비영리 스타트업으로, ‘교환 문화’와 ‘수선 문화’ 캠페인을 적극적으로 전파하고 있다. 그들은 왜, 블랙프라이데이에 가격에 이끌려 지갑을 여는 무분별한 쇼핑을 멈추라고 말할까.

새 옷을 사기 전, 내 옷을 끝까지 책임질 수 있는 용기! 

“블랙프라이데이 행사에 세일가로 등장하는 옷들은 대부분 과잉생산의 결과물이에요. 매번 꼭 필요한만큼 만들면 좋을텐데, 패션 기업에서는 많은 이윤을 남기기 위해 거대 자본력으로 많은 물량을 생산하고 남는 건 폐기처분하는 관행을 따르고 있죠. 이런 관행은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노동자와 지구의 희생을 야기해요. 모든 할인에는 누군가의 희생이 뒤따른다는 걸 기억했으면 해요.”

다시입다연구소 정주연 대표가 블랙프라이데이에 세일 제품이 많이 쏟아지는 이유와 패션 기업의 관행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조태현 작가

정주연 대표는 소비를 10% 줄이면, 탄소 배출은 11% 감소한다고 강조했다. 블프 시즌에 저렴한 가격에 이끌려 새로운 물건을 들이기 보다, 이미 가진 것을 끝까지 책임지는 노력과 용기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어떤 것부터 실천하는 게 좋겠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승연 매니저는 중고 옷이나 교환·수선 문화에 대한 오해를 거두는 것부터 출발하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내가 구매한 물건이 내가 사용을 다했다고 해서 물건의 수명이 끝나는 건 아니거든요. 특히 옷은 더 심하죠. 요즘은 정말 입을 옷이 없어서 옷을 사는 경우는 거의 없잖아요. 워낙 패션 업계의 문화가 빠르게 돌아가다 보니 유행에 따라 디자인이 변하고, 유행에 뒤떨어지는 옷 처럼 보이면 선뜻 잘 안 입게 돼 새 옷에 눈길이 가죠. 이 과정이 반복되다 보면 자연스럽게 옷장엔 안입는 옷들이 쌓여가고 이런 옷들은 머지 않아 의류폐기물이 돼요. 다시입다연구소는 새 옷을 만들 때 미치는 환경오염은 물론, 버려진 옷들이 처리되는 과정도 살피고 있거든요. 상세한 과정(관련 동영상☞다시입다연구소 링크)을 알고 나면, 옷 한 벌을 구매할 때에도 깊은 고민을 하시게 될 거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이유로 나에게서 떠나보내야 할 옷들이 눈에 띈다면, 내 옷의 새 주인을 적극적으로 찾아보시길 추천드려요. 옷을 깨끗하게 세탁한 뒤 추억은 간직하고, 의류 교환 파티에 가지고 나오세요! 내 옷은 새 주인에게 선물하고, 나 역시 새로운 옷을 만날 수 있어요. 새 옷은 아니어도 새로운 옷을 만날 기대감과 함께요. 직접 교환하시는 분들도 재미를 느끼시지만, 이걸 지켜보는 저희도 정말 즐겁고 재미있어요!”

다시입다연구소 이승연 매니저는 한 번 산 옷을 끝까지 책임질 용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사진=조태현 작가

박지원 매니저는 21%클럽을 소개하며 설명을 덧붙였다.

“연결과 확장, 그리고 정말 다양한 옷과 사람이 모여서 진짜 ‘재미’를 만들어요. 저희가 서울의 거점이 되고, 서울뿐만 아니라 다양한 지역에서 다시입다연구소처럼 의생활과 환경의 관계를 살피며 문화활동을 여는 곳들이 많이 생기길 바라는 마음으로 올해 4월 아산나눔재단과 함께 ‘21%클럽’을 기획했어요. 21%클럽은 ‘우리 동네 지속 가능한 의생활 문화 커뮤니티’라고 정의할 수 있지요. 
높은 경쟁률을 뚫고 결성된 전국 9개팀(서울, 나주, 대전, 밀양, 부산, 양산, 전주, 청주, 파주 등)은 지난 6월부터 본격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지역 기반으로 지속 가능한 의생활 문화를 확산하려는 노력은 각기 다른 모습으로 나타났어요. 모두가 다시입다연구소가 운영하는 의류 물물교환 행사 ‘21%파티’를 주축으로 하지만, 각 팀은 자신이 속한 지역에서 각자의 방식과 톡톡튀는 아이디어로 지속 가능한 의생활 문화 활동을 펼쳤어요(관련 기사☞전국 각지에서 지속가능 의생활 문화 만드는 사람들이 한자리에). 다들 21%파티의 이름에 걸맞게 진정한 ‘파티’를 재미있게 즐기는 모습이 정말 뿌듯하고 자랑스러웠습니다.”

다시입다연구소 박지원 매니저(가운데)는 21%클럽이 지역 기반으로 자리를 잡으며 더 다양한 옷과 사람이 모여서 진짜 ‘재미’를 만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사진=조태현 작가

21%클럽을 소개받고 21%파티에 참여한 호스트와 게스트의 특별한 연결에 관심이 갔다. 21%파티를 주최하는 호스트는 자신과 같은 뜻을 지닌 새로운 사람들과 연결, 확장을 경험하며 그 다음을 기약할 수 있는 경험이 이어지고 있었다. 게스트에게는 어떤 연결이 일어났을까. 박 매니저가 이어서 스토리 태크(story tag)를 설명했다.

“21%파티장에 걸려있는 옷에는 가격 태그(tag)대신 스토리 태그가 붙어있어요. 왜 이 옷이 새 주인을 찾게됐는지, 이 옷을 처음 어디에서 샀는지, 이 옷을 몇 번이나 입었는지 물건의 사연을 기록하죠. 그리고 최근에는 맨 마지막에 SNS 아이디를 적는 칸을 새로 만들었어요. 그랬더니 내 옷의 새 주인이 된 사람이 내 옷을 가져가 친절하게 아이디를 태그해 새로운 연결이 일어나는 거예요. 옷의 옛 주인과 새 주인이 자연스럽게 연결되며 교환 문화가 확산되는 걸 눈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된 셈이죠. 스토리 태그는 새 주인에게 일부 정보를 전달하며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는 다시입다연구소만의 방식입니다.”

2024년 6월 출범한 '21%클럽' 활동팀의 모습(왼쪽)과 21%파티 현장에서 볼 수 있는 스토리 태그의 모습(오른쪽). /제공=다시입다연구소·최소원 기자

1년에 4월과 10월 두 번, 가장 큰 행사를 준비하는 이유

다시입다연구소는 지난 4월 19일~28일까지 총 10일간 전국에서 ‘21%파티 위크(week)’를 진행했다. 서울부터 제주까지 전국 27개 지역에서 함께 역대 최다 인원인 1100여 명이 참가했다. 올해로 3회차를 맞이한 이 행사는 지속가능한 의생활 인식 제고를 위한 캠페인 중 하나다. 4월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정 대표는 방글라데시 라나플라자 봉제공장 붕괴 사고로 희생된 의류 노동자들을 추모하고 사회와 환경을 생각하는 의미라고 말했다.

2013년 4월 24일 방글라데시 라나플라자 봉제공장 붕괴 사고로 1129명이 사망, 2500여 명이 부상을 당했다. 희생자는 모두 의류 노동자였으며, 당시 노동자들은 시간당 약 24센트(한화로 약 266원)의 임금을 받았다. 그들은 일주일에 약 6일, 하루에 최소 10시간에서 16시간동안 근무에 시달렸다고 전해진다. 방글라데시뿐만 아니라 의류 산업에 투입된 노동자는 대부분 사회보장제도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개발도상국가에 속해있다. 제품을 포장하고 배송하는 노동자 역시 빠듯한 마감 일정 속에 과도한 업무량을 소화한다고 한다. 정 대표는 패스트 패션 문화를 꼬집으며 “원가 절감이 가능한 이유가 정부 규제가 느슨한 개발도상국가 노동자의 임금이 말도 안 되게 낮은 탓”이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다시입다연구소는 이와 같은 저임금 고강도 노동으로 탄생한 옷들이, 제 몫을 다하지 못하는 것을 막고 교환 문화와 더불어 수리·수선 워크숍도 꾸준히 열어 지속가능한 의생활 반경을 넓히는 데 앞장서고 있다. 

지난 10월 19일, 국제 수리·수선의 날(해마다 10월 셋째 주 토요일을 기념)을 맞아 전국에서 동시에 ‘전국 수선의 날’ 행사를 열었다. 전국 수선의 날은 다시입다연구소가 꼭 기억하고 행동 캠페인을 여는 날 중 하나다. 이번 수선의 날 행사는 서울, 경기도,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제주도 등 전국 9개 도시에서 동시에 28개 프로그램이 진행됐고, 약 2000명에게 ‘지속 가능한 의생활’을 알렸다.

정주연 대표는 “중고 의류나 수선에 대한 거부감을 느꼈던 사람들이 저희 행사에 참여하고 난 뒤에 ‘수선도 예술이 될 수 있다’고 생각을 전환하길 기대한다”며, “전문가의 수선은 ‘티나지 않는 것’이 중요하지만, 우리의 수선은 오히려 ‘티를 내서 새로운 매력이 되는 것’이 핵심”이라고 덧붙였다. 

지속가능한 의생활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와 누구나 실천할 수 있는 교환·수선 문화를 소개하고 있는 다시입다연구소 연구원들. 왼쪽부터 이승연 매니저, 박지원 매니저, 정주연 대표의 모습. /사진=조태현 작가

지난해부터 수선 문화 확산 프로젝트를 담당해 ‘아름다운 수선 혁명’을 이끌고 있는 이승연 매니저가 수선을 경험하며 자신이 겪은 변화에 대해서도 말해주기도 했다. 

“제가 수선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었지만 ‘수선? 필요하니까 한다!’ 정도였고, ‘수선이 곧 생활!’까지는 아니었거든요. 그런데 계속 현장에서 수선에 대해 오해하고 잘 모르던 사람들이 모여서, 자신이 수선한 결과물에 대해 진짜로 좋아하고 기뻐하는 모습을 가까이서 보니까 저도 점점 더 수선을 가깝게 느끼고 보람도 많이 느끼는 것 같아요. 우리가 하는 일의 목적이 눈에 보이니까 그런 경험들이 모여 일을 하는 동력이 돼요. 내가 하는 일이 실제로 누군가를 변하게 할 수 있구나, 누군가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는 구나라는 생각이 들면 진짜 힘이 나죠.”

수선과 교환의 즐거움, 보편화되고 대중화될 때까지

마지막으로 정주연 대표는 옷과 물건에 대한 태도에 변화가 필요한 이유를 설명하며 인터뷰를 마쳤다. 

“아직 텀블러 문화가 정착 중이긴 하지만, 몇 년 전만 해도 카페 브랜드가 적힌 종이컵을 들고다니는 게 멋스럽다고 생각하는 문화가 있었어요. 그런데 이젠 사람들이 의식적으로 텀블러를 사용하는 게 더 대단하다는 걸 인정해주죠. 어쩔 수 없이 종이컵을 사용하는 사람들도, 이전보다는 불편한 마음으로 사용하고 있을 거예요. 환경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알게 됐으니까요. 옷도 마찬가지예요. 지금까지는 아무도 의류 산업이 환경오염의 큰 주범이라고 알리지 않았잖아요. 오히려 소비자에게 더 저렴한 가격으로 더 나은 디자인, 유행을 선도하는 제품을 선보이며 소비를 부추기는 문화가 자리잡게 됐으니까요. 그런데 다시입다연구소의 행사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경험으로 자연스럽게 새 옷을 먼저 떠올리기 보다, 옷장을 먼저 들여다 보게 됐어요. 더 나아가 내가 입던 옷을 다른 사람에게 물려줘야지, 수선해서 입어야지라고 결심하게 되고요. 텀블러 사용의 대중화처럼 내가 새로 입을 옷을 교환 행사에 가서 바꿔오는 것이 더 자랑스러워질 날이 올 거라고 기대하고 있어요. 
우리가 환경을 먼저 생각해서 ‘소비를 하지말자!’라고 무조건 외치기 보다는, 우리가 이미 소유한 옷과 물건에 대해 조금 더 신중하게 생각하고 소중하게 다루는 마음들이 생겨나길 바라요. 내 옷장에 있는 옷들은 나의 역사와 추억이 다 담겨있는 건 사실이니까요.”

우리는 늘 ’옷장에 옷은 가득하지만, 입을 옷은 없다’는 시쳇말에 공감하며 새 옷을 산다. 실수로 세탁을 잘못해서, 무언가에 오염되서, 구멍이 나서, 살이 쪄서 혹은 살이 빠져서, 온라인으로 구매했는데 마음에 안들어서, 유행이 지나서, 사회적 지위가 달라져서 등 내 옷장 속 옷들이 선택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분명히 그 옷을 살 당시에는 꼭 필요한 옷이었다. ‘내겐 더 이상 필요없는 옷을 끝까지 책임지고 새 주인을 찾아주라’는 메시지가 인상깊다. 저마다의 이유로 사람들이 연결되고 변하는 과정에 참여하는 것이 재미있다고 표현하는 다시입다연구소 연구원들, 하루빨리 우리나라에도 의류 수선·교환 문화가 자리잡길 바라본다. 이번 블랙프라이데이엔 장바구니 속 새 옷을 외면하고, 옷장 속 잠든 잊혀진 옷에 안부를 전해보면 어떨까.

▶소셜임팩트뉴스 기사 원문 보기: https://www.socialimpactnews.net/news/articleView.html?idxno=2983

[미니 문답]

왼쪽부터 다시입다연구소 이승연 매니저, 정주연 대표, 박지원 매니저의 모습. /사진=조태현 작가

Q. 헤이그라운드 비영리 멤버십(이하 헤비멤) 프로그램은 다시입다연구소 활동에 어떤 도움이 되나요?

헤이그라운드에는 ‘가치를 위해 뛰는 플레이어’들이 모여있어요. 그 플레이어들의 이야기를 자주 들을 수 있어 다시입다연구소 활동에도 큰 도움이 됩니다. 저희는 재밌게 일하는 걸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요. 일하는 사람이 재미 있어야, 참여하는 사람도 재미있고, 재미있는 일이 서로 연결되고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결과가 도출되는 것 같아요. 

헤이그라운드에는 가치있는 일을, 재미있게 하는 사람들이 모여요. 각자 하는 일을 즐거워 하고, 각자 일을 자랑스러워하면서 함께 나누고 가치에 공감하고 서로를 진심으로 응원할 수 있어서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