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진석 팀장은 NGO에 근무한 경험을 바탕으로 2005년부터 SK텔레콤에서 CSR업무를 해오고 있으며, 이노소셜랩의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 『행동주의기업』, 『넥스트 CSR, 파타고니아』(공저), 『착한 기업을 넘어』가 있으며, CSR 패러다임 전환을 꿈꾸며 ‘Beyond CSR’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 |
글. 서진석 SK텔레콤 ESG혁신그룹 팀장
ESG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앞으로도 ESG 열풍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이다. 재무 보고서만으로는 기업 가치를 제대로 평가할 수 없다는 것은 이제 상식이 되었다. 2018년 5천만 명의 고객에 대한 보안 침해 사건이 벌어진 페이스북의 재무 보고서에는 이런 리스크를 감지할 수 있는 어떤 정보도 없었다. 사회, 환경, 거버넌스에 대한 리스크나 기회 요인에 대한 정보 요구는 계속 강화될 것이다.
최근 ESG를 주도하고 있는 한 축이 투자자라는 점, 그리고 ESG 규제가 급증하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글로벌 101개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ESG 규제는 2010년대 초반에는 연평균 41건이었는데, 2018년 210건, 2019년 203건으로 최근 5배 이상 급증했다. 무엇보다도 2050년까지 넷 제로((Net-zero)를 만들어야 한다는 기후 위기는 ESG 발걸음을 재촉할 것이다.
이러한 흐름에 발맞춰 ESG 영향 범위도 점차 확대되고 있다. ESG 열풍이 대기업, 중소기업을 넘어 최근에는 사회적 경제 조직, 스타트업에게도 거세게 밀려들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스타트업들은 ESG를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 상당히 막연해하고 있다.
현재 대부분의 ESG 지표들이 상장기업을 타겟으로 하고 있기에 더욱 그렇다. 대표적인 ESG 평가기관인 MSCI(Morgan Stanley Capital International)가 제공하는 MSCI ACWI(All Country World Index)는 전세계 투자자들이 가장 많이 활용하는 대표적인 세계주식지수다.
전세계 3천 개 이상의 중대형주를 포함하면서, 전세계 투자 가능 주식의 시가 총액 85%를 차지하고 있다. ESG 평가의 핵심 타겟이 이러한 기업들이니, ESG 열풍이 불어도 스타트업은 막연하게 느껴지는 게 당연하다.
아직 ‘ESG 스타트업’에 대한 기준이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지는 않지만, 스타트업 역시 ESG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다.
미국의 스타트업 엑셀러레이터 및 투자 기관인 ‘500 스타트업스’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스타트업은 ESG 정책 실현이 기업 경쟁력에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응답 기업의 69%는 ESG가 매출을 증가시킬 것으로 답했으며, 압도적 다수인 91%는 ESG가 기업의 인재 유치 및 유지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응답했다. 또한 52%는 투자 유치에 도움이 될 것이라 여겼다.
그러나 내용면에서 아직 ESG 적용은 미흡한 편이다. 62%가 ESG와 관련된 정책을 가지고 있다고 하나, 회사 내 차별금지 규정 마련, 직원 내 인종 다양성, 데이터 보호, 안전 관리 등 사회 영역 중심이다.
72%가 에너지원과 수자원 소비에 대한 모니터링을 안하고 있다고 답변하는 등 환경 이슈는 대비가 미흡했으며, 거버넌스는 아직 제대로 고민하지 못하고 있다.
스타트업의 경우 ESG 기준을 폭넓게 적용하기에는 무리이지만, ESG를 빨리 대비할수록 그 가치는 더욱 커질 수 있다. 500 스타트업스의 크리스틴 차이 CEO는 “ESG는 초기 단계 스타트업에 있어 인재와 소비자를 유치하고, 규정 준수를 강화하며, 시장 접근성을 높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면서, “기업이 빨리 시작할수록 이러한 기회를 포착하고 리스크를 완화할 수 있는 능력은 더욱 커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ESG는 스타트업에게도 빠르게 확산될 것으로 예상된다. 몇몇 단초들이 우리나라에서도 가시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첫째, 대기업이 ESG 경영의 파트너로 스타트업을 바라보고 있다. 신재생에너지 등 신규 사업을 추진하는 경우는 물론 비즈니스 프로세스 개선을 위해서 혁신적인 스타트업과 협업을 추진하면서 ESG 경영을 개선하고 있다. 오비맥주가 리하베스트와 협업하여 맥주 부산물을 활용해 푸드 업사이클링을 추진하는 사례나, 스타벅스-SK텔레콤이 오이스터에이블과 협업해 플라스틱 컵을 없애는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사례 등이 있다.
둘째, 엑셀러레이터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기업이나 기관에서도 ESG 스타트업의 성장을 지원하는 위한 공모가 올해 들어 신설되기 시작했다. SK텔레콤은 지난 4월, 11개 기관과 얼라이언스를 맺어 ‘ESG Korea 2021’ 프로그램을 런칭하고 14개 기업을 선발했으며, 신한퓨처스랩, 우리금융그룹에서도 엑셀러레이터 프로그램 공모 시 올해부터 ESG 스타트업을 포함시키고 있다.
셋째, 스타트업 투자 시에도 ESG 렌즈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지난 8월 SK텔레콤과 카카오는 ESG펀드를 200억원 이상의 규모로 런칭하여 ESG가 건강한 스타트업에 투자하겠다고 선언했다. 스마일게이트인베스트먼트, 위벤처스, TS인베트스먼트 등의 벤처캐피탈 역시 스타트업 투자 심의 시 ESG 평가를 강화할 계획이다.
스타트업이 ESG를 조기에 받아들이는 것은 여러모로 필요하다. 기업 규모가 커지기 전에 ESG를 빨리 정착시키는 것이 비용이 덜 들기도 하고, 투자 및 협업 프로젝트를 추진할 수 있는 기회 요인도 많기에 ESG는 스타트업에게 눈 앞의 이슈가 되었다.
그러나 아직 스타트업에게 적용할 ESG 가이드라인이 구체화되지 않았고 일부는 선언적 수준이라 ESG 적용이 막연한 것이 사실이다. 스타트업이 이산화탄소 배출 관리, 이사회 다양성 등의 정책을 펼치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스타트업에 맞는 방식을 찾아야 할 것이다. 몇 가지 접근 방법이 있다.
첫째는 SDGs(지속가능발전목표, Sustainable Development Goals)와의 연계점을 찾는 것이다. SDGs는 2016년부터 2030년까지 국제사회가 달성해야 할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 양질의 일자리, 기후변화 대응 등 17개 목표는 ESG 영역을 모두 포괄하고 있다. 우리나라 상황에 맞게 과제를 선정한 K-SDGs가 좀 더 구체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다. 17개 목표, 119개 세부 목표를 통해 해당 스타트업이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를 구체적으로 정의하고 실행계획을 도출해보는 것이 필요하다.
둘째는 창출하고 있는 사회적 가치를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강화하는 것이다. ESG가 ‘기업이 리스크 및 기회 요인을 잘 대비하고 있는가’ 등 건강한 기업 구조를 강조한다면, 사회적 가치는 실제 창출하는 사회·환경적 성과에 주목한다. 스타트업이 전반적인 환경관리 체계를 갖추기는 어려워도, 자원 소비 감소 성과 등은 차별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
셋째, 자체적으로 중요한 ESG 정책이 무엇인지 정의하고 이에 대한 기준을 정립하는 것이다. 기준 정립 전에 먼저 핵심 이슈를 파악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ESG 기관이 제공하는 산업별 중대성(materiality) 이슈를 활용하는 방법이 있다.
지속가능회계기준위원회(SASB, Sustainability Accounting Standards Board)는 77개 세부 산업별로, MSCI는 158개 세부 산업별로 핵심 비즈니스에 중대한 리스크와 기회를 줄 수 있는 이슈를 제시하고 있다. (참고. ESG Industry Materiality Map) 이러한 기준이 아니라도 자체적으로 주요한 이해관계자를 정의하고 이해관계자별 핵심 이슈를 도출하는 방법도 있다.
넷째, 데이터 관리를 해야 한다. 데이터 관리는 ESG 경영의 필수 요소다. 유니레버는 2010년 USLP(유니레버 지속가능한 생활 계획, Unilever Sustainable Living Plan)을 런칭하고, 2020년 및 2030년을 목표로 건강·위생, 환경, 삶의 질과 관련된 목표를 내걸었다. 이는 모두 73개의 세부 목표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세부 목표별로 구체적으로 데이터 관리를 하고 있다.
피터 드러커는 “측정해야 관리할 수 있고, 개선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핵심 ESG 이슈를 선정하고 이를 개선하려 한다면 데이터를 측정하고 관리해야 한다. 비재무적 가치를 구체적인 숫자로 나타냄으로써 이것이 기업 가치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것을 제시해야 한다. 그러할 때 투자, 고객 유치 및 공급망 확보에 훨씬 도움이 될 것이다.
ESG를 현재의 포괄적인 정보 공개 프레임으로 본다면 스타트업이 적용하기 어려울지 모르나, ESG 경영을 얼마나 잘 하는가 하는 프레임으로 본다면 스타트업이 더 잘 할 수도 있다.
비콥(B Corp)은 사회·환경적 성과를 공식적으로 검증받고, 투명성 및 책무성에서 높은 기준을 충족하여 사회적 이익과 재무적 이익을 균형있게 추구하는 기업에게 부여하는 인증이다. 전 세계적으로 4천개가 넘는데, 파타고니아, 벤앤제리스, 더바디샵처럼 규모가 큰 기업도 있지만, 엣시(Etsy), 올버즈(Allbirds), 부레오(Bureo), 와비파커(Warby Parker)와 같이 스타트업 시기에 인증받은 기업이 많다. 우리나라에서 비콥 인증을 받은 기업 역시 모두 스타트업이다.
ESG가 스타트업에게 리스크일 수도 있지만, 기회이기도 하다. 자신의 기업에게 맞는 ESG 정책을 찾고 이를 앞서서 적용해간다면 사회·환경 문제 해결도, 비즈니스 경쟁력 제고도 함께 이루어 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