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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전쟁 신재생에너지 전환을 앞당길까?

우크라이나 전쟁
신재생에너지 전환을 앞당길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전 세계 경제가 출렁이는 가운데 유럽의 에너지 시장 재편에 이목이 쏠리고 있습니다. 자원을 무기로 삼은 러시아의 에너지 패권에 대응해 EU(유럽연합)가 에너지 자립을 외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이에 따라 신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이 가속화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신재생에너지 전환, 그 연결고리를 풀어봅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2월 24일, 세계 원유거래의 기준이 되는 브렌트유는 2014년 이후 처음으로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했고, 천연가스 가격은 51%나 뛰었습니다. 이에 EU가 다급해졌습니다. EU와 영국은 천연가스 최대 수입국으로 전체 천연가스 수입량의 41%를 러시아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유럽 싱크탱크인 ‘트랜스포트 앤 인바이러먼트(Transport & Environment)'는 유럽의 러시아 천연가스 의존비용을 하루에 약 1억 1800만 달러(한화 약 1445억원)로 추정하기도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원유의 35%, 석탄의 40% 이상을 러시아로부터 수입하고 있습니다. 러시아가 에너지를 무기로 삼을 경우 전 유럽의 혼란이 불가피한 상황이 된 것입니다.
 

‘에너지 안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에너지와 자원은 국가 근간을 뒷받침하는 요소입니다. 당연히 유럽도 러시아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노력을 해왔습니다. 2차 대전 이후 원유는 중동 의존도를 줄이고, 천연가스는 러시아 의존도를 낮추는 등 에너지 안보를 강조했습니다. 1970년대 오일쇼크를 겪으며 북해 유전을 개발해 자급률을 높였고, 천연가스는 러시아 이외 지역에서 액화천연가스(LNG) 형태로 수입을 다변화했습니다.
 

하지만 한계가 있었습니다. 가스의 경우 대규모 인프라 투자가 필요하고, 단기간에 도입처를 바꾸기가 쉽지 않을뿐더러 가격 차이도 커서 러시아 의존도를 쉽게 낮추지 못했습니다. 더욱이 팽팽한 냉전시대에도 러시아는 안정적인 가스 공급을 통해 신뢰를 높인 덕에 러시아 천연가스는 최선의 선택지로 굳어져 왔습니다. 



물론 불안의 불씨는 있었습니다. 특히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갈등은 직접적인 타격을 미쳤습니다. 유럽으로 가는 가스의 상당량이 우크라이나를 통과하는 가스관을 통해 공급되기 때문입니다. 2009년 러시아가 천연가스 가격을 계속 올리자 우크라이나가 대금을 제때 지급하지 못하고, 이에 러시아가 가스 공급을 13일간 중단하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우크라이나 역시 당하고만 있지 않고 서유럽으로 가는 가스의 공급을 막으면서 존재감을 과시했습니다. 양국의 갈등이 유럽의 에너지 문제로 이어진 대표 사례입니다. 그리고 지난해 12월 러시아가 특별한 이유 없이 유럽으로 향하는 야말-유럽 가스관을 막아 유럽의 천연가스 가격이 한달 새 80%까지 급등했습니다. 러시아는 가스를 정치적 수단으로 이용한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천연가스를 무기로 유럽의 목줄을 쥔 러시아의 기세 등등한 모습은 올해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전환점을 맞았습니다. 전쟁을 일으킨 국가에 가해지는 경제 제재의 하나로 러시아발 에너지 수입을 줄인다는 EU의 의지가 확고해졌기 때문입니다. EC(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우리를 명시적으로 위협하는 공급자에게 의존할 수 없다”며 러시아산 화석에너지에서 독립하기 위한 에너지 계획을 제안하고 구체적인 실행 방안 수립에 나섰습니다. 

최근 러시아산 화석연료 구매를 전면 중단한 미국이 28일 ‘에너지 안보를 위한 미국-EU 태스크포스’를 구축해 지원 사격에 나서면서, 유럽의 에너지 자립은 힘을 받을 전망입니다. 미국은 올해 LNG 150억㎥를 EU 회원국에 공급하고, 태스크포스를 통해 재생에너지를 확대 지원하는 등 공동의 노력을 할 방침입니다.



EU는 지난 3월 8일, 40%(연간 연간 155Bcm*)에 달하는 대 러시아 천연가스 의존도를 올해 말까지 3분의 2 수준으로 낮추고, 2030년까지 석유와 석탄 등 러시아산 화석 연료 의존도를 단계적으로 줄여 나가겠다는 'REPower EU’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Ursula von der Leyen) EU 집행위원장은 “에너지 가격 상승의 영향을 완화하고 에너지 전환을 가속화하기 위해 지금 행동해야 한다”고 취지를 강력히 밝혔습니다.

*Bcm(Billion cubic meter): 용적 단위로 1Bcm은 10억m3에 해당한다. 



주요 내용은 △러시아 에너지 의존 감축 방안 △천연가스 비축 안정화 방안 △가격 급등 긴급 대처 방안 등으로 구체적으로 천연가스 수입선 다변화, 바이오메탄과 녹색 수소 생산·수입 확대, 에너지 소비 효율화, 재생에너지 발전 확대, 에너지 전환을 가로막는 기반시설의 병목현상 해소 등을 제시했습니다. 

2030년까지 풍력 발전 설비 480GW, 태양광 발전 설비 420GW를 추가하고, 건물에 재생에너지 보급을 확대하기 위해 지붕형 태양광 패널을 보급하는 등 재생에너지 구축이 가속화될 것으로 보입니다.
 

유럽 기업들도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블룸버그 그린은 기업들이 불안정한 에너지 수급과 전력비용을 상쇄하기 위해 자사 지붕과 유휴 공간에 설비기간이 짧은 루프탑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스웨덴의 태양광발전사업자 얼라이트의 판매 전력량 또한 기존 170메가와트(MW)에서 최근 500MW까지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IEA(국제에너지기구)도 ‘러시아로부터 가스 의존도를 줄일 10가지 방법’을 제시했는데, 여기에도 재생에너지 보급을 확대하는 방법이 담겨 있습니다. 이처럼 다수의 에너지 전문가들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불러온 천연가스 및 화석연료 수급 불안정이 유럽의 에너지 전환을 가속화 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습니다. 



러시아로부터 에너지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유럽 각국은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에너지 컨설팅업체 우드 맥킨지(Wood Mackenzie)는 포브스지 기고문을 통해 “러시아는 의도치 않게 더 빠른 에너지 전환을 촉발시킬 수도 있다”며 “(천연가스) 수급 위협과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에너지 가격 상승은 EU와 영국, 다른 지역의 화석연료 사용 중단 정책과 행동을 공고히 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습니다. 특히 대 러시아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독일은 2035년까지 재생에너지 100%로 에너지 자립을 달성하겠다며, 육상 풍력 및 태양광의 연간 증설량 3배, 해상 풍력은 2배 이상 높일 것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 “EC가 러시아 에너지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천연가스 의존도를 줄이는 일은 온실가스 저감을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러시아가 천연가스를 정치적 도구로 삼는 것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서 필요하다.”
-옌스 스톨텐베르그(Jens Stoltenberg) 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사무총장 

• “2030년까지 미국과 유럽에서의 신재생에너지 수요가 1조 달러 이상 증가할 것이다.”
-유럽의 최대 자산 운용사 슈로더(Schroders) 

• “EU는 올해 러시아산 가스 의존도를 상당량 낮추고, 수년 내 러시아산 가스에서 독립할 것이다. 쉽지 않지만, 실현할 수 있다.”
-
프란스 티메르만스(Frans Timmermans) EU 기후 담당 집행위원




물론, 그 과정이 쉽지만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재생에너지 발전이나 수소의 대량 보급에는 많은 시간이 걸리고,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해 화석에너지 사용이 불가피하기 때문입니다. 유럽연합은 '2030년까지 유럽연합 평균 탄소 배출량을 1990년의 55% 수준까지 줄인다'는 'Fit for 55'를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입법 패키지로 내놓은 바 있습니다. 

Fit for 55에는 석탄•석유보다는 탄소를 덜 배출하는 천연가스를 발판 삼아 화석연료를 퇴출하고 재생에너지로 전환하려는 계획이 녹아져 있습니다. 때문에 지난 1월 발표된 UN의 그린 택소노미 최종안에는 조건부이기는 하지만 천연가스가 녹색으로 분류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주 에너지 수급에 차질이 생기면서 화석에너지 사용 저감조치에 제동이 걸린 것입니다. 독일은 탈석탄 기조에 따라 발전을 중단하는 일부 석탄발전소 퇴출을 유보하며 언제든 가동할 수 있는 상태로 유지하기로 했고, 2025년까지 석탄 발전을 중단하기로 한 이탈리아와 체코, 불가리아 등도 러시아산 천연가스를 대체하기 위해 필요하다면 단계적인 탈석탄 계획을 유보할 수 있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한국의 에너지경제연구원 역시 REPowerEU가 천연가스 중심으로 작성되어 석유와 석탄 부문의 의존 감축이 어떻게 이뤄질 수 있는지 구체적 내용이 부족하다고 지적하며, “우크라이나 사태가 촉발한 에너지 위기와 REPowerEU 시행으로 유럽 국가들의 청정에너지 전환 속도가 오히려 느려질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 “2035년까지 재생에너지 100%를 목표로 하되, 러시아산 에너지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2030년 이후에도 석탄발전소를 가동할 수 있다.”
-로버트 하벡(Robert Habeck) 독일 경제부총리 겸 경제에너지부 장관 

• “우크라이나 전쟁이 전 세계가 기후위기 대응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게 할 위험이 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Antonio Guterres) 유엔사무총장 

• “단기적으로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에너지 수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각국에서 약속했던 석탄화력발전소의 폐쇄가 늦춰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온실가스 배출량이 증가할 수도 있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온실가스 배출량 저감에 도움이 될 것이다.”
-박훈 기후변화행동연구소 연구위원




하지만 과도기의 혼란일 뿐, 장기적으로 이번 사태가 에너지 전환에 대한 필요성을 절감하고 실행을 가속화 하는 촉매제가 될 것이라는 게 중론입니다. 예측불허의 상황이나 에너지 패권에 흔들리지 않고 안정적으로 에너지를 수급하기 위해서는 에너지 자립이 바탕이 되어야 하고, 이는 곧 각 국가 주도의 재생에너지의 확대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IEA는 3월 17일 발간한 논평을 통해, 러시아가 촉발시킨 에너지 대란이 유럽뿐 아니라 전세계 친환경 전환을 가속화시킬 수 있다고 전망하기도 했습니다. IEA는 오일쇼크 이후 원자력 에너지가 급부상한 사례를 예로 들며, 친환경 에너지 분야 또한 비슷한 흐름을 맞이할 것으로 예상하며 "친환경 투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한다면, 2050년에는 재생에너지의 전력비중의 70%에 달하고 전기차가 대규모로 도입되어 화석연료가 대체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유럽을 중심으로 전세계 에너지 시장의 새로운 바람이 불어오는 지금, 해외에너지 의존도가 94%에 이르는 우리나라 역시 에너지 자립을 위해 어떤 방향의 에너지 전환을 이룰지 고심해야 할 때입니다. 우크라이나의 평화를 기원하며 전쟁이 촉발한 에너지 위기가 과연 녹색에너지 전환을 가속화할지, 아니면 오히려 발목을 잡을지 계속해서 지켜봐야겠습니다. 


도움. 김효진 임팩트온(IMPACT ON) 에디터 &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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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우크라이나 전쟁 신재생에너지 전환을 앞당길까? 등록일 2022.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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