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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VAC Column] 2023년, 임팩트 투자 생태계 혁신을 위한 세 가지 방안

프로필 이미지 임**온(no*****)

2022.11.08 11:13:14 1,393 읽음



박란희 임팩트온 대표는 조선일보에서 10년을 기자로 지냈고, 첫 경력단절 이후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환경재단 기획위원을 거쳐 조선일보 공익섹션 더나은미래 편집장을 하면서  비영리 및 소셜섹터 전반과 ESG・CSR 현장을 10년 동안 경험했다. 2020년 6월 ESG 전문 온라인 미디어 스타트업 임팩트온을 창업해, 빠르면서도 심층적인 ESG 전문 콘텐츠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중이다.


글 박란희 임팩트온 대표


올해 서울 성수동을 두 번쯤 다녀왔습니다. 오랜만에 옛 조선일보 더나은미래 사무실과 근처 성수동 골목길을 걸으며, 복잡한 생각에 잠겼습니다. 10년 전, 성수동의 사무실에서 5년가량 소셜벤처들의 성장과 흥분, 고민과 번뇌를 곁에서 지켜봐왔으니, (개인적으로는) 소셜벤처들의 태동기를 증언할 몇 안 되는 인물이라고 해야 하나요. 임팩트스퀘어, 루트임팩트, 소풍벤처스 등 소셜벤처 중간지원 조직의 시작부터, 자고 일어나면 한 곳씩 소셜벤처들이 입주해오던 그 활기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소셜벤처뿐만일까요. 당시 사회적경제에 관심이 있는 언론사 기자들 10여 명과 뜻을 모으고 ‘사회적경제언론인포럼’을 만들어 두 달에 한번씩 전문가들을 초청한 공부모임을 벌였습니다. 조선일보부터 한겨레까지 보수와 진보를 아우른 모임이었습니다. 당시 사회적기업과 소셜벤처는 한계에 다다른 시장경제 시스템을 구원할 구세주이자, ‘혁신의 아이콘’으로 여겨졌습니다.

 

사회적경제는 진보 진영의 어젠다이지만, 자활기업(1996년), 사회적기업(2007년), 마을기업(2010년), 협동조합(2012년) 등의 관련 법안과 제도화가 이뤄진 것은 보수정권에서였습니다. 정부 세금만으로 이뤄내기 힘든 사회문제를 민간의 자금과 혁신, 기술을 통해 해결한다는 취지는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보수정권의 이해관계와 맞아떨어졌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영국도 마찬가지인데, ‘대처의 아들’이라고 불리는 보수당 캐머런 정부에서 ‘빅소사이어티캐피털’이라는 투자를 장려하며 사회적경제의 꽃을 피웠습니다. 

 


요즘 공식석상에서 금기어로 통하는 ‘라떼는’을 굳이 언급하며 과거의 기억을 소환한 이유는 10년이 지난 지금의 상황이 안타깝기 때문입니다. 제도화는 이뤄졌지만, 사회문제 해결과 혁신은 별로 체감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ESG시대를 맞아 사회적기업의 정체성을 어떻게 강화해야 할지, 위기감이 여기저기서 많이 감지됩니다. 


사회적경제의 양적 성장은 이미 정부가 매년 발표하는 자료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지난해 12월 정부 발표에 따르면, 2017~2020년 동안 사회적경제기업은 2만2000개에서 3만2000개로 10% 늘었고, 취업자 수는 25만4000명에서 31만4000명으로 5% 늘었습니다. 소셜벤처 또한 2031개(2021년 8월 기준)로, 전년 1509개보다 34.6% 증가했습니다. 


하지만 정부가 발표하는 중소기업 통계자료만 봐도 기업 숫자는 늘어납니다. 예를 들어 국내의 중소기업 숫자는 688만8000개(2019년)이고 종사자 수는 1744만명인데, 이는 전년 대비 각각 3.8%, 2% 늘어난 수치입니다. 


문제는 숫자가 아니라, 사회적인 임팩트(영향력)입니다. 지난 5월 사회적경제미디어 ‘이로운넷’에 실린 기사 중 의미심장한 내용이 있었습니다. 사회적경제기업과는 달리, 소셜벤처는 ‘소셜 디스카운트’가 부담돼 중소벤처기업부터 소셜벤처로 판정은 받지만 정작 외부 공개는 하지 않는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간 소문으로만 들려오던 게 사실로 확인된 것입니다. 


‘소셜 디스카운트’ 때문에 사회적기업이나 소셜벤처라는 ‘네이밍’을 숨기는 현실에서, 과연 소셜벤처는 어떻게 사회적인 임팩트를 낼 수 있을까요. ‘유기농 제품’ ‘비건 제품’ ‘친환경 인증 제품’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자랑스러워하지 않으며 물건을 팔 수 있을까요. 


연구자도 아닌 주변인이 이런 현실이 벌어진 원인이 무엇인지 정확히 밝혀내긴 어렵습니다. 다만, 몇 가지 단서는 있습니다. 우선, 섣부른 제도화로 인해 민간의 혁신이 약해졌습니다. 중소벤처기업부, 고용노동부, 기재부 등 각 사회적경제 유형별로 제도화가 이뤄지면서 다양한 지원정책과 정부 주도의 투자기금도 만들어졌지만, 이러한 사회적경제는 정치 어젠다화되면서 경제(비즈니스)가 아니라 정치적인 영역으로 놓이게 되었습니다. 


시리즈 A, B, C까지 받으며 롤모델로 성장해가는 소셜벤처를 발견하기 어려운 점도 아쉬웠습니다. 물론 일부 성공사례가 있습니다. 물류 스타트업 두핸즈(옛 두손컴퍼니)는 지난해 네이버로부터 216억원을 투자받았고, 로보틱스 기술을 이용한 폐기물 수집과 재활용 스타트업 수퍼빈은 올해 180억원 규모의 시리즈B 후속투자를 받았습니다. 돌봄 교사 매칭 플랫폼 째깍악어 또한 지난 9월 160억원 규모의 시리즈B 투자를 유치했습니다. 하지만 이들 기업은 초기에는 소셜벤처로 포지셔닝했을지 몰라도, 어느 시점에서부터는 더이상 소셜벤처보다는 기술 스타트업 포지션으로 미디어에 등장합니다. 


사회적기업이나 소셜벤처 생태계가 너무 좁은 생태계 안에 갇혀서, 생태계 외부와의 네트워크 확산, 협업, 혁신, 교류 등을 이뤄내지 못한 측면도 아쉽습니다. 대기업 사회공헌의 파트너십을 통해 매출을 일으키는 사례는 많았지만, 일반적인 스타트업 혹은 벤처 생태계에서 보듯 해외 진출, 1000만명 앱 다운로드, 대기업과의 M&A 혹은 상장을 통한 엑시트(Exit) 등의 사례는 보기 어려웠습니다. 


이러한 결과가 바로 ‘베스트 프랙티스(Best Practice)’가 별로 없다는 것입니다. 사회적기업진흥원에서 ‘바이 소셜(Buy Social)’ 캠페인을 통해 사회적기업 제품을 사자는 운동을 하지만, 제품이나 해당 기업의 CEO 인지도도 낮고 그 기업과의 관여도(engagement)도 낮은 상태에서 제품 홍보를 해봐야 별 소용이 없습니다. 사람들의 구매행동 사전 단계는 반드시 ‘인지(perception)’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소셜벤처 혹은 사회적기업의 대표모델 사례가 필요한 이유는 바로 이러한 대표모델이 소셜벤처 혹은 사회적기업 전체의 ‘인지도’를 높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몇몇 회의에서 “10대 베스트 모델사례를 끊임없이 홍보하라”는 조언을 해봤지만, 그 이후 소식을 별로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2023년 이후부터 전 세계는 매우 어려운 경제위기가 닥친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이미 인플레이션이 시작됐고, 부동산 침체, 금융권의 유동성 위기 등 모든 상황은 사회적경제 생태계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올해 사회적기업 뉴스 중 가장 눈에 띈 것이 국내 의류 대기업인 코오롱인더스트리FnC부문(이하 코오롱FnC)이 소셜벤처 ‘케이오에이(K.O.A)’를 인수합병한 것입니다. 케이오에이는 2014년부터 르 캐시미어 등 윤리적 패션 제품을 판매해온 소셜벤처 1세대입니다. 이번 사건은 소셜벤처 또한 일반 스타트업처럼 기업공개(IPO)나 인수 합병(M&A)을 통해 사업에 대한 성과를 인정받는, 소위 ‘엑시트(Exit)’ 할 수 있음을 보여준 드문 사례입니다. 


코오롱FnC가 소셜벤처를 합병한 이유는 ‘패션산업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혁신을 위해서입니다. 소위 업사이클링, 리사이클링이라고 불리는, 소재의 전 단계에서부터 재활용 및 재사용이라는 순환경제의 관점에서 접근하겠다는 것입니다. 이 분야에서만큼은 소셜벤처가 내부의 인적, 물적 자산보다 더 뛰어나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코오롱FnC의 ESG실장이 된 유동주 대표는 “소셜벤처 최초의 사례라 그만큼 부담이 된다”고 했습니다. 


이런 사례가 더 많이 나와야 합니다. 사회적기업, 소셜벤처가 대기업의 성장방식을 따르는 게 아니라, 고유의 강점을 더욱 강화하고 이를 세일즈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건, 사회적기업과 소셜벤처 생태계에 구조적인 변화입니다. 


예를 한번 들어보겠습니다. 2020년 하반기 ESG 미디어를 창업한 지 2년 반 만에 ESG생태계가 우리 사회에 급격히 만들어지는 것을 보면 놀랍기 그지없습니다. 10년 전 성수동의 소셜벤처 생태계도 마찬가지이지만 생태계라는 건 누가 강제로 만들 수가 없습니다. ESG 정보를 제공하는 미디어를 비롯해서, ESG 교육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대학과 법무법인, 증권사, 컨설팅기관까지 순식간에 생태계가 급격하게 만들어졌습니다. 심지어 “ESG가 너무 남용된다”고 할 만큼 각종 민간기관에서도 소비자를 대상으로 ESG를 알리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한달에 임팩트온을 방문하는 방문자는 6만 명에 달하는데, 갑자기 특정 기사의 조회 수가 높아지는 걸 보면 필시 다른 커뮤니티 플랫폼에서 공유된 기사입니다. 여기저기 열리는 포럼을 일일이 쫓아다니기 힘들 정도입니다.

  


사회적기업과 소셜벤처 생태계도 이러한 기반을 구축해야 합니다. 소셜밸류커넥트(SOVAC)가 미디어이자 플랫폼과 같은 역할을 해줬으면 좋겠습니다. 미디어는 그 자체로 콘텐츠를 담는 그릇이지만, 생태계의 플랫폼 기능을 합니다. 미디어의 장점은 다양한 외부 파트너들과도 교류가 가능한 ‘유연성’입니다. 소셜벤처나 소셜벤처의 CEO 스토리를 그냥 일회용 콘텐츠로 바라보지 말고, ‘콘텐츠 IP’로 바라보는 건 어떨까요. BTS 혹은 오징어게임이 콘텐츠이지만 상품이 됐듯이, 이제 모든 기업이나 제품, 서비스는 그 자체가 스토리텔링이 되어야 하고 그 스토리텔링은 콘텐츠 IP가 되는 형태로 바뀌고 있습니다. 


이러한 콘텐츠가 제대로 구축되면, BTS의 팬클럽 ‘아미’가 있듯이 콘텐츠를 기반으로 한 커뮤니티가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커뮤니티 활동 중에서 인기를 끄는 활동의 공통점은 ‘자기 주도성’입니다. 핵심리더를 중심으로 자율적으로 커뮤니티를 꾸릴 수 있도록 SOVAC이 마중물 역할만 해주면 됩니다. 


콘텐츠, 커뮤니티와 함께 중요한 것은 ‘기술’입니다. 171명의 직원(47명이 취업 취약계층)을 고용한 AI 데이터 전문기업 테스트웍스 윤석원 대표에게 얼마 전 조직 성장을 위한 조언을 부탁했는데, “사회적기업도 기술이 없으면 혁신이 되지 않는다. 또 조직이 작다고 미루지 말고 반드시 직원교육을 중요시하라”고 ‘기술’과 ‘직원교육’ 두 가지를 말했습니다. SOVAC이 소셜벤처를 위한 기술교육과 기술접근성 향상을 위한 다양한 고민을 해줬으면 좋겠습니다. 


미국의 ‘티치포아메리카(Teach For America)’라는 비영리단체는, 미국의 무너진 공교육 기반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 아이비리그를 비롯한 명문대생들이 1~2년 동안 공립학교에 봉사를 하는 프로젝트로 선풍적인 인기를 끈 바 있습니다. 한때 ‘미 대학생들이 가고 싶은 10위 기업’에 속하기도 했습니다. 이를 벤치마킹해서, 외부의 다양한 기술자원(퇴직 기술자그룹이든, 개발을 전공한 대학생이든)을 소셜벤처, 사회적기업과 연계해 매칭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ESG투자의 스펙트럼에서 가장 왼쪽에 있는 것이 ‘네거티브 스크리닝(부정적인 기업 배제)’이라면, 가장 오른쪽에 있는 것이 ‘임팩트 투자(소셜 임팩트 기업에 투자)’입니다. ESG가 유행이라고 ESG로 갈아탈 것이 아니라, 더 강력한 임팩트 성과에 집중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