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대응 과정에서 아동·청소년이 더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만들어 주시면 좋겠습니다. 미래세대 일원이자 지구의 한 구성원으로서 저희는 우리의 미래를 결정하는 일에 주체적으로 나서고 싶습니다"_지구기후팬클럽 어셈블 정인서 운영진
2015년, 각국 지도자들은 파리 기후 협정을 맺어 지구 평균 온도 상승폭을 산업화 이전(1850~1900년) 대비 1.5도 이내로 제한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2024년 1월부터 9월까지 지구 평균 온도는 산업화 시기 이전보다 1.54도(±0.13도) 올라 역사상 가장 뜨거운 해로 기록될 전망이다. 해수면 높이와 해양 열 함량, 온실가스 양도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한국도 올 여름(6월~8월) 전국 평균기온이 25.6도에 달하며 관측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5월 20일부터 9월 30일까지 3704명의 온열질환자가 발생했고 이 중 34명이 사망했다. 이제 더이상 기후문제는 북극곰의 일도, 미래 세대의 일도 아니다. 지금 우리 앞에 닥친 현실이다. 유엔(UN)은 이대로라면 머지않아 지구 평균기온이 산업화 이전보다 2도 이상 상승할 것이며 지구의 많은 지역이 살기 어려운 곳이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기후위기 문제는 미래 세대에 더 심각하게 다가온다. 국제아동권리 NGO 세이브더칠드런이 2021년 발표한 '기후위기 속에서 태어나다' 보고서에서는 2020년에 태어난 아동들이 이전 세대보다 평생 2배에서 7배 더 많은 기상 이변을 경험할 것으로 예상했다. 2024년 10세 아동은 1970년대 10세 아동에 비해 3배 이상의 홍수와 5배 이상의 가뭄, 36배 이상의 폭염을 겪고 있다.
기후 변화는 기상뿐 아니라 미래 아동의 삶 전반을 바꾸고 있다. 무엇보다 이들은 이전 세대와 달리 '기본권'의 위협을 받는다. UN아동권리협약에서는 아동의 4대 권리를 '생존권', '발달권', '보호권', '참여권'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기상 변화에 따라 먹거리, 질병, 기후 재난 등의 영역에서 추가적인 문제가 발생할 것으로 예측돼 그들의 건강, 교육과 휴식, 안전, 존중 등이 지켜지기 힘든 상황으로 나아가고 있다.
아동·청소년은 이러한 문제의 피해자인 동시에 해결사다. 2020년 3월 대한민국 청소년 19명이 국가의 온실가스 감축목표가 국민의 기본권을 지키지 못한다고 주장하며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3년이 흐른 올해 8월, 255명의 영·유아와 청소년 등을 비롯한 국민 5289명이 함께한 헌법소원에 대한 판결이 내려졌다. 2031년부터 2050년까지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부재하다며 '헌법 불합치' 판결을 받았다. 기후 위기가 아동·청소년의, 그리고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할 수 있음을 법원이 인정한 것이다.
세이브더칠드런도 기후문제를 아동 권리의 문제로 해석하고 있다. 때문에 아동·청소년이 기후위기를 진지하게 생각해 보고 직접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다양한 활동을 벌였다. 지난 4월 지구기후팬클럽 '어셈블(earth+Assemble)'을 창단하고 7월부터 인천, 광주, 대구, 부산 등 전국 4개 권력에서 '국회로 가는 미래세대 기후 회담'을 열었다. 아동들이 경험한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공유하고 직접 제안한 대응 방안을 모아 직접 발표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지난 11월 13일 국회의원회관 제2소회의실에서 '지속가능한 지구를 위한 세대 간 국회 기후 대담(이하 '기후 대담')이 개최됐다. 세이브더칠드런과 더불어민주당 박지혜 의원, 이소영 의원이 공동 주최했다.
이날 행사는 개회사, 환영사, 축사, 기조강연, 발표, 패널토론 순서로 진행됐다. 세이브더칠드런 오준 이사장이 개회사를, 지구기후팬클럽 어셈블 정인서 운영진이 축사를 전했다. 더불어민주당 박지혜 의원과 이소영 의원의 환영사는 일정상 지면으로 대체했다.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정수종 교수가 '변하는 기후, 지켜야 할 아동인권'을 주제로 강연을 진행했다.
이날 메인 세션에서는 '지구를 위한 미래세대의 목소리'라는 주제로 11명의 아동이 아동·청소년의 시각에서 바라본 기후위기 문제와 필요한 정책을 발표했다. 대표 발표자 11명은 지구기후팬클럽 어셈블 소속으로 인천, 광주, 대구, 부산 등에서 '국회로 가는 기후 회담'에 참여한 69명의 목소리를 하나로 모아 전했다. '교육', '법·제도', '산업', '행정 시스템' 등을 주제로 기후위기 대응 방안을 제시했다.
첫 번째 조에서는 ▲연 5시간 미만의 교육 시간 ▲흥미를 떨어뜨리는 이론 위주 교육 ▲역량 있는 환경 교육 교사의 부족 ▲정기 평가 및 피드백 시스템 미비 등을 현 기후위기 교육의 문제점으로 꼽았다. 실효성 있는 기후위기 교육을 위해 2달에 한 번 정규 교과 속에서 실습 위주의 참여형 학습을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교사 연수 등으로 환경교육 역량을 개발하고 정기적인 평가와 피드백으로 교육과정의 지속적인 개선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두 번째 조에서는 '아동 참여 보장을 위한 법·제도 개선'을 주제로 3명의 아동이 발표했다. 이들은 아동·청소년들의 실질적 참여가 기후위기 대응의 실질적인 과제 중 하나라고 주장했다. 또 '유엔아동권리협약', '청소년기본법', '청소년 선언문' 등 생존과 안전에 직결된 의제에 청소년들이 직접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법적 근거에 의거해 아동·청소년에게 기후위기 대응에 참여할 권리와 책임이 있다고 선언했다.
아동·청소년이 기후위기 대응 논의와 정책 수립 과정에서 목소리 낼 수 있는 구체적인 수단으로는 '아동·청소년 기후변화대응의회 신설'을 제안했다. 여기에서는 아동·청소년이 기후위기 관련 정책을 제안하고 아동 주도 기후위기 인식 개선 캠페인 등을 기획·실행하는 등의 역할을 할 수 있다. 또 청소년, 국회, 정부, 교사, 청소년기관, NGO, 전문가 등이 자유롭게 기후위기에 대해 토론할 '기후변화 공론의 장'을 마련하고 모든 참여자가 동등하게 참여할 것을 요구했다.
발표자는 "아동은 기후 위기의 중요 이해당사자고 실질적 문제 해결에 기여할 수 있다"며 아동·청소년에게 적극적이고 주도적인 참여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어릴 때부터 관련 논의와 정책 수립 등에 참여하면 성인이 되어서도 계속 관심을 가지고 잘 참여하게 될 것"이라며 장기적인 시각에서 실질적인 문제 해결 주체가 될 아동·청소년의 참여가 중요함을 어필했다.
세 번째 발표는 '기업의 책임 강화 및 소비자로서 아동의 알권리 및 선택권 확대'를 주제로 이어졌다. 이들은 모든 소비자가 기업의 친환경 정보에 접근하고 올바른 소비를 할 수 있도록 ▲환경 관련 표기법 제정·강화(그린워싱/그린허싱 정기 관리, 표준 친환경 등급제 마련 등) ▲친환경/ESG 경영 지원(환경컨설팅 및 교육 프로그램 운영, 환경 보조금 제도 도입 등) ▲아동청소년 알권리와 참여권 보장(소비자 교육 프로그램 확대, 아동 기후위기 대응 참여 활동비 지원 등)의 정책을 제안했다.
'기후위기 대응 체계·시스템 개선 방안'을 주제로 발표한 네 번째 조는 국민의 기본권과 존엄 차원에서 기후위기에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회적 불평등을 악화하고 당장 국민의 생존과 안녕을 위협할 수 있는 기후변화에 대해 정부와 법기관이 기후취약계층 보호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특히 정책수립 과정에서 배제되기 쉬운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에 대한 보장이 필요하다고 짚으며 기후 대담에서 함께 나눈 기후위기 대응 아이디어를 공유했다.
학생들의 발표가 끝난 후, 환경부 원지영 기후적응과장과 더불어민주당 박지혜 의원,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손선미 기획평가과장이 무대 위로 올라 세 명의 아동 및 청중과 문답을 나눴다. 객석에 앉은 아동·청소년들도 '2050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한 로드맵이 부족하다는 비판에 대한 정부의 접근과 정책 조정·보완 계획', '2030년까지 획기적으로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달성한 방안' 등 적극적이고 구체적인 질문을 던져 기후문제에 대한 그들의 관심을 느낄 수 있었다.
이어진 패널토론 시간에는 인천연구원 강민경 연구원과 지구닦는사람들 와이퍼스 황승용 활동가, 한겨레신문 최우리 기자가 '모두 함께 만드는 변화'를 주제로 앞선 발표에 대한 의견을 건넸다.
이날 기조강연을 한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정수종 교수는 '세이브더칠드런(Save The Children)'이 아니라 "Children save The Earth"라며 기후위기를 인식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아동·청소년들을 노력을 격려했다. 또 "앞으로 살아가는 세상에서 우리(아동·청소년)가 어떤 역할을 하고 어떤 목소리를 낼 것인지를 더 고민해야 한다. 왜냐하면 결국 여러분들이 지금의 피해자일지라도 최고의 해결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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